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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별 Jan 01. 2022

08. 나 다섯 살 아니라고!!

근데 또미는 세 살이야.

'이제 두 밤 자고 나면, 새해가 되는 거야. 그러면 꼬미는 다섯 살, 또미는 세 살이 되는 거지! 멋지지?'

'새해가 뭐야? 왜 새해가 돼? 다섯 살 안 해.'


새해가 되기 두 밤 전부터 남편은 아이들을 재우며 새해 타령을 했다. 아이들이 나이를 한 살씩 더 먹을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그는 아마새해가 되어 나이가 한 살 더 많아지면 아빠 말을 조금 더 잘 들을 것이라는 류의 동화 속 공주님의 대답을 기대한 것 같다. 아빠 경력 4년 차이면 현실성 없다는 것을 깨달을 법도 한데 아직도 인턴 과정 수료를 못한 것이었을까. 나는 옆에서 웃음이 나려는 것을 꾹꾹 누르며 진지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12월 31일의 대화 주제는 또 새해였다. 멀쩡하던 해가 갑자기 바뀌어서 새 해가 된다 하니 아직 날짜 개념 없는 네 살이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2021년은 무엇이고 2022년은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아이의 수 세기는 하나, 둘(발음이 안돼서 둔), 셋, 등등 가다가 멋지게 아홉, 열!(연!) 에서 끝나는데 수 단위가 너무 크다. (아, 쓰다 보니 숫자 교육도 날짜 교육도 안 시키는 엄마가 문제구나.) 어쨌든 2021'년'이랬다가 하늘에 떠 있는 '해'라고 했다가. 거기에 새(bird)도 붙고. 엄마 닮아 따지기 좋아하고 논리적인 따님께선 질문을 끝없이 늘어놓으셨다. 혼자서 갑자기 봄, 여름, 가을, 겨울 하며 계절의 변화도 읊조리며 '지금은 겨울'이라고 했다. 아 이제 마무리 하나 보다 싶었다. 그런데 엄마 아빠가 방심한 사이 갑자기 '아빠! 도대체 그럼 봄은 언제 와?'라고. 겨울 다음 순서가 봄이라고 하니 얼굴 가득 만족의 미소를 띠길래 이해하는가 보다 싶었는데 '왜?'라고 다시 시작했다. 결국 지구 책 달님 책 모두 소환. 계절은 순서대로 돌아가며 반복된단다 아가야. 비슷한 듯 비슷하지 않은 시간들이 그렇게 흘러가지.




암튼 남편은 인내심을 가지고 너는 이제 다섯 살이다, 라는 것을 알려주고자 하였으나 아이는 지속적으로 거부하였다. 다섯 살은 너무 언니고 자신은 아직 아가이기 때문에 다섯 살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 또미는? 했더니. 또미는 세 살 맞다고. 옆에서 꼼지락대던 또미는 세 살이 무슨 말인지도 모른 채 깔깔 웃는다. 또미가 웃자 꼬미는 신나서 계속 또미는 세 살 해~ 세 살이야~ 하며 주입식 교육을 한다.


새해 첫날에는 아이들의 할머니, 할아버지 댁으로 달려왔다. 꼬미 편만 들어주는 할머니 덕분에 꼬미는 할머니 옆에 딱 붙어서 어질 줄 모른다. 덕분에 엄마와 아빠는 숨 돌릴 시간을 얻는다. 어머님께서 정성 가득 준비해주신 떡만둣국과 유부초밥, 굴전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뒷정리를 마무리한 후, 나는 또미를 재운다는 핑계로 작은 방으로 들어왔다. 순순히 잠들어준 또미 덕분에 금방 여유시간을 얻었다. 남편이 슬금슬금 따라 들어와서 한쪽에 자리 잡고 앉는다. 꼬미 오디오가 비는 시간이 없어서 시끄럽다며. 쟤는 도대체 입이 안 아플까 중얼거리며. 그러다가 갑자기 꼬미가 할머니를 괴롭히는 소리에 남편도 나도 귀가 쫑긋했다. 할머니께서는 우리 꼬미 이제 다섯 살이네~ 하시고, 아 다시 시작한다.


'나 다섯 살 아니야! 다섯 살은 너무 크잖아! 난 아기야!'

'또미가 아기지~'

'할머니 잘 들어봐. 꼬미는 할머니보다 작지. 할아버지 보다도 작지. 엄마 아빠보다도 작단 말이야. 그래서 나도 또미처럼 아기야! 그럼 아기인 거야!'


할머니는 목가다듬고 다시 설명을 시작하신다.

아이도 다섯 살이 될 수 없는 이유를 또 늘어놓는다.

또미가 깰까 봐 자장가 음량을 두 단계 높인다.


아가, 다섯 살이 되어도 너는 엄마의 아가이고

또미처럼 보살펴주고 안아줄 테니 걱정하지 마렴.

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지는 다섯 살은 더 재밌을 거야.


어머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가 새해 첫날에도

일상 속에 그냥 묻혔을 수도 있었을 순간들을

글로 모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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