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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별 Dec 24. 2021

07. 코로나 시대의 산타할아버지

고생했다 남편아♡

'산타할아버지! 산타할아버지! 산타할아버지이이!'

'이때야! 어서 들어가! 잘하고 와!'


드디어 그의 어린이집 산타할아버지 데뷔전!

아이를 물가에 내놓은 것 마냥 내 마음이 두근거려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성였다. '호우~호우~ 호우~ 뭬에이리 크리스마스~ 루돌프가 여기가 맞다고 했는데~'연습한 대로 잘한다. 이제 집으로 가야지. 믿는다. 당신은 무대체질이니까.





D-10

Previously on Desperate Baby Diaries

https://brunch.co.kr/@littlestar2430/14


사촌동생이 알려준 마술 유튜브를 보며 열심히 공부하던 그는 마술 용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시 격무에 시달리고 있던 그를 다독이며 마술 용품은 내가 알아보고 사주겠다고 했다. '초등학생들에게 인기 많은 마술 용품' 오우 딱 이거다! 8세 이상 사용가! 배달 요정님의 도움 덕분에 금세 내 손에 들어왔다. 아이들이 잠든 밤 (이럴 땐 꼭 일찍 안 잔다.) 사용설명서와 유튜브의 도움으로 몇 가지 연습을 해 보았다. 우리는 2세-4세 관객의 수준을 고려하여 그중 네 가지 도구를 이용한 마술쇼를 기획하였다. 남편아 내가 대본을 써 두었으니 틈틈이 연습을 하여라.


우리의 선택은 불이나는 손가락, 길이가 바뀌는 막대기, 새장, 그리고 새장 뒤의 요술상자였다.


D-2

또미와 뒹굴뒹굴 꿀 같은 시간을 보내던 중 어린이집에서 갑자기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한 내 입에서는 '여보세요'가 아닌 '선생님 무슨 일인가요!'가 먼저 튀어나왔다. 어린이집 긴급폐쇄와 하원 조치. 꼬미 친구의 등원과 하원을 함께 해 주시는 할머니께서 방금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으셨다고 했다. 그날 친구는 등원하지 않았었지만 그 전날은 어린이집에 왔다가 콧물이 많아서 일찍 귀가조치하셨다는 설명과 함께. 또미를 유모차에 태워 어린이집으로 달려가 그 짧은 시간 동안 머리가 복잡했다. 친구는 선별 검사소로 갔고 결과는 내일 나올 것이라고 했다. 친구 결과에 따라 음성이면 다른 친구들도 검사할 필요 없이 바로 어린이집은 정상 운영을 하고, 양성일 경우에는 전원 코로나 검사 및 자가격리를 실시할 예정이었다. 내일까지 기다려도 된다고 하셨지만 엄마의 불안은 시작되었다. 아, 꼬미가 어제부터 기침을 시작했다. 내 목도 왠지 따끔거린다. 또미는 무방비상태다. 우리 셋은 한 방에서 잔다. 오늘 당장 검사를 받아야 할 것만 같다.


일단 꼬미를 집으로 데려와서 아이들 점심을 먹였다. 먹이고, 씻기고, 낮잠 재우기를 먼저 하자며 서를 정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 집에 일찍 와서 신난 꼬미를 진정시켜서 먹이고, 치우고, 응가한 또미의 엉덩이와 손을 씻기고 옷을 입혔다. 남편의 부재중 전화를 뒤늦게 확인하고 메시지를 읽었다. 지금 강북삼성병원이라고?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바로 전화를 걸었다.


이야기인즉슨, 딸 어린이집 친구 할머니가 코로나 바이러스 사 결과 양성이라고 했더니 순식간에 COO (chief operating officer)가 나타나서는 당장 오늘 중 코로나 검사 결과를 알려주는 곳으로 가서 검사 받고 보고하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한 달 새 코로나 검사 벌써 다섯 번째 받고 있는 남편아. 이게 무슨 일이니 정말, 참 고생이 많구나. 그런데 이번 건은 꼬미가 검사받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귀한 따님 코에 면봉을 넣고 싶지 않았던 꼬미 아지께서는 거듭 장고 끝에 지금 아이 둘을 태우고 오라고 했다. 낮잠 잘 시간이기도 하고 강북삼성병원은 초행길이라 고민되긴 했지만 곧 만나자고 했다. 평소에는 '굳이' 돈 내고 검사받는 이 선별 검사소가 한산한 편인데 오늘은 꽤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낮잠 잘 시간에 갑자기 차를 타고 나가자 아이들은 신났다.


병원 주차장에서 검사가 끝난 남편을 만났다. 또미는 너무 어리기도 하고 다행히 감기 증상도 없으니 검사받지 않기로 했다. 엄마가 안 보이면 우는 또미가 걱정되었지만 남편에게 또미둘이서 차에서 기다려달라고 했다. 우리에겐 비장의 무기 쌀 떡뻥이 있으니까. 꼬미의 손을 잡고 남편이 알려준 선별 진료소로 향했다.


문진서를 작성하고, 간단한 대면 문진을 했다. 파란 방호복을 입은 의료인들을 보며, 꼬미는 여기 있는 산타 할아버지와 산타 언니들은 왜 다 파란색 옷을 입냐고 했다. 어린이집에서 산타 놀이를 하다 온 아이 눈에는 산타로 보였나 보다. 뭔가 소리도 시끄럽고 긴장감도 가득했지만 아이의 눈에는 산타로 보인다니 그래도 다행이었다. 린이집 친구 할머니가 양성 판정을 받으셨다고 한다, 어제부터 기침을 한다, 라는 나의 정보에 더해 꼬미의 체온이 37.5도로 기록되자 (원래 기초체온이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지만) 우리는 별도의 공간으로 안내받았다. 덕분에 덜 기다리긴 했다. 긴장감은 배가 되었다. 그런 엄마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꼬미는 신나게 엉덩이춤을 추다가 엄마도 같이하자고 해서 사람들이 모두 보는 곳에서 둘이 같이 몸을 흔들었다. 아무렴 어떠니. 너의 긴장감과 지루함 해결될 수있다면 마스크를 쓴 엄마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단다.


드디어 우리의 검사 차례.  한번, 으로도 한번 검사를 했다. 엄마가 하는 모습을 본 꼬미는 안 하겠다고 난리였다. 검사실 안에 계시던 분께서 밖으로 나와 '하나도 안 아프다'며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고 검사를 시도하였지만, 엄마도 열심히 동조했는데, 궁지의 몰린 4세는 울부짖으며 강력한 힘으로 거부했다. 결국 엄마가 안고 다른 선생님 두 분이 오셔서 아이를 잡았다. 겨우겨우 검사를 끝냈다. 놀라고, 아프고, 속상하고, 엄마에게 배신감을 느낀 꼬미는 엄마품에 안겨 한참을 울었다. 아가 미안하구나. 주머니에 슬쩍 넣어갔던 딸기맛 젤리를 꺼내자 순순히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주었다. 서둘러 차로 갔다. 주차장아이 울음소리 가득 차 있을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또미는 아빠와 '까까' 하며 과자 먹고 있었다. 아빠 크게 칭찬. 집으로 돌아와 남편은 재택근무를 시작하고 아이들은 뒤늦게 낮잠을 잤다.


D-1

당일에 결과를 알려준다던 그 검사는 다음날 새벽이 되도록 소식이 없었다. 초조하게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드디어 문자가 하나씩 도착했다. 다행히 세 명 모두 음성! 남편은 근했고 나는 우리의 검사 결과를 어린이집에 알렸다. 그날 오후, 선생님들과 친구의 검사 결과도 다행히 음성이라고 했다.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 다행히 모두 음성이고 해서 내일부터 정상 운영합니다. 많이 놀라고 정신없으셨을 텐데, 죄송하지만 그래도 아버님 산타 이벤트 준비부탁드립니다.'


퇴근 후에 리허설을 하고 했다. 아이들 재우면서 긴장이 풀렸는지 나 같이 잠이 들어버렸다.


D-day

평소 등원 시간보다 조금 일찍 꼬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서둘러 집으로 와서 남편의 리허설에 참여하였다. 남편은 대본 연습을 마무리하고 마술 순서를 반복했다. 나는 아이들의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술의 마무리는 요술상자에서 사탕이 나타나는 것으로,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기로 했다. (원장 선생님께 미리 여쭈어보고 무설탕 유기농 사탕으로 준비했다.) 어린아이들은 무서워하며 대성통곡할 것이니 돌발사항에 잘 대처하라는 지령도 내렸다.



코로나 시대의 산타는 변신도 어렵다. 풍성한 수염 안에 KF94 마스크를 쓰고는 귀가 아프다고 낑낑거렸다. 수염 고정용 고무줄과 마스크 줄이 겹치니 얼마나 힘들까. 원장 선생님께서는 남편이 48시간 내 음성 결과서를 가지고 있으니 정 힘드시면 마스크를 벗고 하라고 하셨지만, 남편은 어린이집 방문이기 때문에 방역수칙을 더욱 철저히 준수하겠다고 외쳤다. (안쓰럽고 기특하다.) 또미는 아빠의 변신과 마술쇼를 신기해하며 쳐다보았다.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인 덕분에 산타는 슬리퍼를 끌고 (그의 루돌프는 내복 바지만 입고 자전거에 앉아) 지하주차장을 통해 현장으로 향했다.





그의 산타 이벤트는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일단 돌아온 그의 얼굴에서 약간의 흥분과 만족감을 읽을 수 있었다. 원장 선생님께서도 괜찮았다고 말씀해 주시고. 무엇보다 꼬미가 집으로 돌아와서는 '엄마!! 진짜 산타할아버지를 만났어!! 사탕이 없었는데 나타났어! 막대기가 길어져라 하면 길어졌어!' 라며 종알종알 삼십 분도 넘게 이야기를 했다. 아빠였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참 다행이구나 아가야. 이렇게 너의 동심을 오래오래 지켜줄 수 있으면 좋겠다. 엄마아빠가 노력할게.


남편아 큰일을 해 내었구나. 칭찬 칭찬. 자 이제 나의 친정으로 가자. 대구로 운전을 하렴♡ (오늘도 과업이 너무 많구나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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