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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 Dec 20. 2023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나의 바이올린 이야기

마음에만 간직하고 있던,

내 바이올린

초등학교 1학년, 처음 바이올린을 잡았다. 1/4바이올린. 아직도 가지고 있다. 학교 방과후 프로그램으로 하게 되었고 지금의 악기까지 산 마가 바이올린에서 악기를 구매했다.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어렵다는 바이올린을 쉽게 배울 수 있었다. 당시 방과후 선생님이 칭찬을 많이 해주셨던 걸로 기억한다. 내 동영상도 자주 찍어가셨다.

초등학교 3학년, 바이올린을 그만뒀다. 왜인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대신 플룻을 배우기 시작했다. 플룻은 더 빨리 배웠다. 배운 지 한 시간 만에 소리를 내고 간단한 곡을 연주했다. 절대음감 덕에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악보가 들어있었다.

초등학교 방과후로 쭉 플룻을 배웠다.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자연히 그만뒀다. 하지만 교회 오케스트라는 꾸준히 했다. 그 무렵 동생이 바이올린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무려 개인 레슨. 솔직히 화가 났다. 동생은 바이올린을 정말로 못했고 엄마는 그래서 개인 레슨을 붙였다. 우리 엄마는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늘 말하셨다. 엄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방과후로도 잘 하는 나는 그 정도면 됐다고 판단했고 악기에 대한 센스가 전혀 없었던 동생은 더 배워야 한다고 판단했다.

어느 날 나는 엄마에게 서운함을 털어놓았고 말하기로는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다고 하려 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플룻을 했고 엄마는 당연히 내가 플룻을 하고 싶어 하는 줄 알았기에 플룻으로 개인 레슨을 붙여주셨다.

재수 없게 들리겠지만 첫 수업부터 칭찬 세례를 받았다. 호흡이 좋고 손가락도 빠르고 방과후로 배웠다기엔 너무 잘 한다고. 여섯 달 정도 지나고 콩쿨을 준비하면서 자연스레 선생님은 내가 전공을 할 거라고 생각하셨다. 하지만 매일 8시간을 연습하면서 애정도 없는 악기를 하려니 힘이 부쳤다. 그리고 나는 그 선생님 앞에만 서면 자신감을 잃어버렸다. 연습할 때는 청아했던 소리가 레슨만 하면 듣기 싫은 소리로 변했다. 난 그 사실을 선생님께 털어놓지 못했고 결국 좋지 않은 일로 레슨을 그만뒀다.

그 이후로 엄마는 나에게 다른 악기를 배우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고 공부가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악기를 완전히 그만두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지원한 동아리에서 전부 떨어졌다. 유명한 동아리들은 이미 합격자가 정해져있는 상황이었는데 나는 그걸 몰랐다. 결국 남은 동아리 중에 그나마 끌렸던 오케스트라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2학년, 오케스트라 단원은 4명이었다. 4명이서 축제 공연을 준비하고 축제가 끝난 뒤로 한 번도 악기를 열지 않았다. 나에게 플룻은 그 정도 의미였다. 그냥 할 줄 아는 악기 하나.

지지난 주쯤 결국 침대 밑에 처박혀 있던 악기를 팔았다. 정가 600 정도 하는 악기를 300 주고 중고로 구매했었는데 팔 때는 오히려 350을 받고 팔았다. 속이 아주 시원했다. 쓰지도 않는 악기 팔아서 통장이 넉넉해지니 기분이 정말 좋았다. 그 길로 다시 마가 바이올린에 가서 내가 쓸 악기를 80 주고 사 왔다. 음색도 아주 마음에 들고 외형도 내가 가지고 싶었단 딱 내 바이올린이었다.

기억나는 건 지판 잡는 방법 정도. 지금까지 2주 정도 혼자 바이올린을 익혔다. 동생의 스즈키 책을 빼앗아 기초부터 연습했다. 클래스101, 유튜브, 인스타 가리지 않고 바이올린 독학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악기에 익숙해지니 아주 간단한 곡은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한테도 내가 바이올린 하는 걸 말하지 않았던 이유는 솔직히 이 나이에 새로운 악기를 배운다는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남아도는 것도 아니고 내년이면 수능 준비해야 하는데 무턱대고 악기부터 사고 독학을 하겠다고 이러고 있으니 나도 내가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레슨을 받지 않는 이유는 재정적인 이유도 있지만 약간 레슨에 대한 트라우마 같은 것이 생겨서도 있다. 악기 레슨은 모르는 것을 끊임없이 물어봐야 하고 계속 고쳐나가야 한다. 하지만 듣는 즉시 까먹어버리는 이 머리, 그리고 문제가 있으면 상의하는게 아니라 혼자 해결하려는 이상한 습관은 레슨을 하는데 방해가 된다. 이 때문에 레슨을 그만뒀던 경험이 있어 다시 뭔갈 시작하기 무섭다.

어쨌든 나는 음악이 좋다. 피아노도 좋고 바이올린도 좋고 저음 악기들도 좋고 하다못해 팀파니도 매력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시 악기를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이제서야 이걸 말하는 이유는 생각해 보니 지금 시작해서 꾸준히 하면 아주 적게 잡아도 5년은 배울수 있다. 내가 그만두지만 않으면. 그렇게 생각하니 뭐 전공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나 좋아서 하겠다는데 못할게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람 만나고 나에 대해 이야기 하는게 더 괜찮아진다면 레슨도 받을거다.

지금 목표는 대학가서 오케스트라 들어가기! 그리고 더 나중엔… 개인 연주회 열기.

생각해보면 항상 바이올린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동경했었다. 나는 그 악기가 좋았는데 왜 더 일찍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현실적인 목소리에 내가 원하는 걸 깊숙히 밀어넣으니 남는 건 후회뿐이라는걸 알았다.

내가 원하는 걸 하기 위해 나아지고 싶고, 제발 집중력 좀 돌아오면 좋겠다. 내가 노력해야되는 거란건 알지만 쉽지 않다. 약 꾸준히 먹으면 집중력 돌아온다는 거 다 뻥인거 같다. 잃어버린 집중력은 그냥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만큼 노력하면 언젠간 괜찮아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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