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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 Nov 22. 2023

뒷 이야기

'좌충우돌 정신과 입원기'에서 풀어내지 못 한 것들


브런치 첫 글은 굉장히 공들여서 썼다. 입원 초에 초고를 썼었는데 두 달동안이나 묵혀두고 이 단어 저 단어 고르다가 간신히 마무리 해서 발행했다. 웃긴게, 처음이 어렵다고 그 다음부터는 그냥 술술 썼다. 사실 대부분은 일기에 의존해서 쓰는 것이기에 '창작의 고통'이랄 게 없었다. 고민을 많이 했던 건 내 글이 트리거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자극적인 내용들은 자체 검열로 삭제했다. 또 특정 인물을 저격하지 않기 위해서도 애를 썼다. 혹시나 같은 입원 동기들이 보고 불편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그럼에도 마지막에 지율씨 등장은 빼놓을 수 없었지. 입원 생활에서 만난 선물 같은 세 사람. 전공의 선생님, 교수님, 지율씨. 


일기에 다 담지 못 한 수 많은 일들이 나를 성장 시키고 치유 시켰기에 사실 내 입원 생활을 직접 보지 않은 사람들은 공백이 있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왜 갑자기 엄마와 '딥'한 이야기를 나눴으며 그 사건으로 그렇게 기분이 올라오는 게 말이 되냐고. 


(아무도 궁금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답을 해보자면 엄마와의 대화는 정말 계획 없이 발생한 일이지만 어쩌면 지나쳐야 했을 관문 같은 거였다. 거의 매일같이 면회 오는 엄마가 불편해 교수님이 오셨단 이유로, 밥을 먹어야 한단 이유 등등으로 빨리 빠져나오곤 했다. 불편하니까 피하기만 했던 건데 내 주치의들은 피하는 대신 표현해 보라고 부추겼다. 그래서 사실 이건 인과관계가 확실하다. 


그리고 이건 퇴원 후에 느낀건데 난 다분히 감정 변화가 심하고 거기에 잘 취하는 편이다. 기분이 좋으면 굉장히 좋고 기분이 안 좋으면 굉장히 안 좋다. 대부분은 그 사이 언저리에 있지만, 그리고 그 감정의 시효가 오래가지 않지만 어쨌든 기분에 잘 휘둘린다. 별로 티는 안나지만. 그래서 엄마와의 대화라는 묵힌 숙제를 끝내고 기분이 굉장히 좋았던듯 싶다. 원래 묵힌 숙제 끝내는 게 속이 시원해지는 일이니까. 그리고 사실 그 뒤에도 불안하고 힘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마냥 해피해피 하지는 않았음. 


어쨌든 그건 내 입원 생활에서 큰 터닝포인트가 되었고 그 후로 퇴원하고 싶다는 마음이 엄청 커져서 적극적으로 퇴원을 주장했었다. 자칫하면 기한에 떠밀리는 퇴원이 될 뻔 했지만 막판에 마무리 잘 한 덕에 자진 퇴원하고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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