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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L POSTINO Sep 02. 2020

환생,
과거의 수선을 통한 되삶의 태도

정세랑, 『지구에서 한아뿐』




이 소설의 열쇠말을 감히 하나 꼽자면 '환생'이다. '환생'은 한아가 운영하는 수선집의 이름이기도 하다. 환생(還生)을 한자어로 풀이해보자면, '(되)돌아와 사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환생이라는 단어를 과거로부터  '전적으로' 새로운 삶을 사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앞선 풀이에 따르면 환생은 오히려 과거로의 강한 회귀를 의미한다. 즉, 새로운 삶을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과거의 되삶이 필요한 것이다.


살아가는 것은 필연적으로 자취를 남기게 마련이다. 우리의 모든 언과 행은 잔여물을 남기게 된다. 그것이 헌 옷의 닳음이든, 천연자원의 사용이든, 사랑이든 간에 말이다. 추억과 같이 우리에게 흐뭇함을 주는 잔여물이 있는가 하면, 회한과 존재의 무거움처럼 우리를 옭아매는 잔여물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잔여물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가? 혹시 당신은 그것으로부터의 전적인 자유, 완전한 해방을 생각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가 상투적으로 이해하는 환생을 꿈꾸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전적으로 새로운 삶은 불가능하다. 만일 가능했더라면 (지구인)경민은 지구로 돌아올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국 돌아와야만 했다. 지구를 떠난 경민은 지구를 제외한 어디든 떠나갈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어디를 가더라도 지구로는 갈 수 없음을, 즉 광활한 우주의 어디를 가더라도 자신이 두고 온 한아는 만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지구인)경민은 죽음의 순간을 앞두고 결국 한아를 찾게 된다.


이처럼 환생은 과거로의 회귀를 요구한다. 다만, 그것은 과거의 답습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과거를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추억이 깃든 옷이 한아의 수선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동시에 갖게 되듯, 낭비된 자원이 재활용과 환경운동을 통해 미래세대를 위해 다시 쓰이듯, (외계인)경민이 (지구인)경민의 삶을 수용하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내듯 말이다. 


과거를 무시한 직진은 지금껏 얼마나 많은 비극을 낳았는가? 물론 과거로의 무비판적 회귀는 문제이다. 그러나 과거를 새로운 방식으로 '수선'하여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을 열때 비로소 진정한 '환생'은 가능하다. (지구인)경민의 모습과 삶을 끌어 안되 새로운 사랑을 했던 (외계인)경민과 한아처럼. 그렇기에 (지구인)경민에 대한 한아의 마지막 입맞춤은 과거의 수선이 완성되는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주적 차원에서 사랑과 환경이라는 두 주제를 '환생'이라는 삶의 태도로 묶어내는 정세랑 작가의 모습에서 SF장르가 가지는 문학적 가능성을 본다.




덧, 문학은 반드시 쉬워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작가 이인성은 "문학은 더듬거리며 허우적거리며 자기 말을 찾아 나서는 것"이기에 "마치 모든 것을 처음으로 말하듯이 그토록 어렵게" 말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문학이 반드시 어려워야 할 이유 또한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정세랑 작가는 해야 할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말하는 데 가장 재능있는 작가 중 하나이리라.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그의 작품이 드라마나 영화화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넷플릭스에서 『보건교사 안은영』을 제작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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