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프롤로그
첫 책 출간 이후 4년 반 정도가 지났다. 2019년에 마무리한 책을 7년 차였던 2016년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이 글을 적고 있는 2024년의 나는 어느덧 직장인 15년 차다(쓰면서도 실화냐 싶다). 처음 '이직', '진로 고민'을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한 시점 대비 두 배 이상의 시간을 직장인으로 더 살아내는 동안, 나는 회사를 두 번 더 옮겼고, 셀 수 없는 '이번엔 진짜 그만둘 거야'를 넘겼고, 어느 날엔 팀장이 되었다. 세상에선 코로나 팬데믹이 지나갔고, AI가 일상으로 들어왔으며, 밥값이 두 배가 되었다. 많은 것이 변했다. 그리고 많은 것이 여전하다. 내가 어떤 세상을 통과하는 중이건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고민'만큼은 미동도 없이 한자리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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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이는 경험과 고민의 무게에 비해 그것을 정리해 뱉어내는 속도는 느렸다. 세상을 잠시 멈춘 팬데믹은 나의 생각하는 힘까지 끊어낸 듯했다. 최소한의 인풋으로 내보낼 수 있는 아웃풋은 모두 먹고살기 위한 일터에 가져다 썼다. 이직한 회사에서는 새로운 업과 전문성이 다른 동료들 사이 나의 일을 넓히고 증명하느라 코가 석 자라는 이유로, 갑자기 다들 주식과 부동산으로 인생 한 판을 다시 쓰는 상황에 나는 더 이상 어디에 최선을 다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유로, 내가 겪는 일과 하는 생각에 대해 표현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졌다. 물론, 같은 상황도 다르게 활용해 본인의 것을 꾸준히 세상에 내놓는 이들도 주변에 많았다. 꾸역꾸역 먹기만 하고 소화하지 못한 생각들로 배가 잔뜩 아팠으나, 내가 밥줄을 제외한 모든 것을 내려 둔 탓이니 할 말도 없었다.
실무자와 관리자 사이, 요동치던 주식과 집값 차트와는 반대로 몇 년간 횡보하던 나의 성장 그래프에 답답해만 하던 어느 날, 친구가 폰을 쑥 내밀며 말했다. "요새 앱으로 커피챗이라는 걸 하던데, 안 해 볼래? 네 이직 얘기, 회사 얘기 듣고 싶은 사람 많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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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시절, 해외에 취업이 하고 싶어 이력서를 백 장 가까이 썼던 적이 있다. 그 나라에 아는 사람도 없는데 내가 원서를 낸 회사에 아는 이가 있을 리 없었고, 오로지 공고문에 적힌 Job description에만 의존해 나의 이력을 끼워 맞춰 보기도, 지레 포기하기도 했었다. 어쩌다 면접이라도 볼 기회가 올 때면 누구라도 좋으니 그 회사, 그 직무, 비자 상황과 같은 것들을 먼저 경험한 이와의 '커피 한 잔'이 얼마나 간절했던가. 그런 '정보형 미팅'을 온라인으로 옮겨 놓은 커피챗 서비스는 분명 많은 구직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터였다. 내가 상담자로서 처음 진행했던 커피챗도 그런 유형이었다. 내담자는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 마침 지근거리에 있는 팀에 경력으로 지원한 분이었는데, 회사의 문화, 해당 공고의 배경, 면접 팁 등을 묻는 질문들에 신나서 대답해 준 기억이 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그러한 '문답'들이 쌓일수록 어떤 한계가 같이 쌓였다. 질문의 범위가 이 회사, 특정 직무 주변을 맴도는 것도 갑갑했지만 무엇보다 나는 답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이를테면 'OOO는 뭐 하는 직무인가요?'라는 넓어도 한참 넓은 질문에는 내가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주어야 할지, 내가 하는 설명이 맞기는 한 건지, 일단 내가 이 설명을 해도 되는 사람이 맞는 건지 헷갈렸고, '이런 이런 경력으로 XX에 지원하면 합격할 수 있을까요?'라는 그 회사 인사팀도 모를 질문엔 답변에 이중 삼중 쿠션을 만드느라 진땀을 뺐다. 급기야 '아무것도 모르는데 뭐부터 해야 돼요?' 하는 '쌩신입' 취준생의 질문에 좌절하는 스스로를 보고 깨달았다. 내담자의 답답함을 해갈하고, 나도 충만해질 수 있는 커피챗이란 '질문과 답변'이 아닌 '대화'라는 걸.
마침 이용하던 서비스에 본인의 상담 유형을 기재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고, 나는 이렇게 써붙였다.
・이런 분들께 추천해요! - 대화를 통해 내 마음이 향한 곳을 알고 싶은 분.
・이런 분들께는 추천하지 않아요. - 단순한 정답이 필요하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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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커피챗이 2022년 1월이었고, 2024년 4월 현재까지 약 180회의 커피챗을 나눴다. 방향을 '고민하는 사람과의 대화'로 잡고 나자 어디 숨어 있었는지 모를 수많은 고민하는 사람들이 내게 퉁퉁 부은 목소리로 묵직한 커피잔을 건넸다. 대부분의 경우 서로가 직장인이라 이야기는 주로 한밤중에 나눌 때가 많았다. 고민하는 밤이란 게 어떤 건지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한 마디 한 마디 알뜰히 함께 고민하다 보면 30분은 참 짧았다. 누군가 먼저 했던 고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누군가 나와 함께 이 고민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대화를 걸어온 사람은 때로 목이 메기도 했고, 나 또한 서럽고 외로운 하루를 보내고 온 날이면 나의 이 하잘것없어 보이는 오늘이 누군가에게는 위안이 된다는 사실에 더 큰 위로를 받기도 했다.
항상 '일'이라는 것이 중요했던 나이지만, 생각해 보면 나는 '나의 업' 자체보다는 '내가 일한다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그렇게 애써 직업을 바꾸어 카피라이터가 되었을 때도, '크리에이티브한 광고', '카피 잘 쓰는 법'과 같은 것들보다는 '내가 어떤 카피라이터가 되어야 할까'를 고민했다. 브랜드의 내러티브를 설계한다는 거창한 타이틀을 내건 팀을 맡고 있는 지금도, 부끄럽지만 나는 세상의 멋진 브랜드들의 이야기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어 갈 것인가'에 더 관심이 많다. 무의식적 절필(?)을 하고 지낸 몇 년간 주변에서 '제발 좀 뭐라도 쓰라!'고 나를 닦달할 때도, 이젠 나의 업에 관해 무언가 전문적인 글을 써내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을 통증에 가깝게 느낄 때도 꿈쩍하지 않던 손가락이 마침내 이렇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 역시 '우리가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해 할 이야기들이 쌓였다는 자각에서다.
지금까지 나누었던 커피챗의 기록들을 들춰 보며, 비슷한 고민들을 묶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누군가의 밤에 가닿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 볼 생각이다. '직장인 판 천일야화', '회사원 아라비안 나이트' 같은 거랄까. 지금 내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 무슨, 하는 생각이 수천 번은 들었지만 제 머리 못 깎으면 중이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손가락에 철판을 깐다.
언제부턴가 일에 대한 고민이라는 것을 반드시 싸워 이겨야 할 '문제'라 여기지 않는다. 어차피 하나의 고민을 해결한다 하더라도 다음 고민이 찾아올 것이고, 그것은 곧 일하는 사람이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대하고 있다는 증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많은 것이 변할 때, 여전한 자리에 있을 그 고민의 밤들이 외롭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천일야화를 쓸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수많은 고민의 이야기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한밤의 커피잔을 채우고 있으니까.
| 디카페인 커피챗
퇴근 후에도 퇴근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고민 이야기. 일하는 우리들의 달고 쓴 천일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