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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바이킹 Apr 12. 2024

대기업으로 이직하면
성장할 수 있을까요?

001. 중견기업 8년 차 팀장의 고민



본 편지 대화는 데스커 라운지의 전시 프로젝트 'Letter to Worker'를 통해 나눈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일부는 편집되었으며, 손편지 전문은 데스커 라운지에 방문하시면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고민이ㅣ 8년 차 이커머스 팀장 / 영업기획


일하면서 배우고 성장하는 것을 좋아하고 일을 더 잘하고 싶어 하는 고민이라고 합니다. 

앞만 보고 일하다 보니 벌써 8년 차가 되어버렸습니다. 최근 성장이 멈춘 듯해서 이직을 준비하던 중에 재직 중인 회사에서 승진을 하게 되어 고민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이직을 목표하고 있는데 그간 몇 번의 이직 시도는 성공하지 못하였고, 내년까지 꾸준히 대기업으로 이직을 시도해 보려고 했습니다.


제가 대기업으로 이직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대기업에는 ‘나보다 더 뛰어난, 존경할 수 있는 동료’들이 많을 것이다

작은 기업에 있다 보니 남들보다 빠르게 팀장을 달고 팀원들을 이끌면서 일을 하고 있지만, 일찍 리더의 역할을 맡다 보니 쌓아 둔 경험과 지식보다 알려줘야 하는 것들이 많아 스스로의 부족함이 더 크게만 느껴집니다. 사수 없이 일하면서 성장하기 위해 여러 온/오프라인 강의 및 아티클을 구독하면서 ‘저 사람과 일하면 배우는 것도 많고 즐겁겠다’고 생각한 분들은 대기업 분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더 늦어버리기 전에 ‘같이 일하면서 배울 수 있고, 존경할 수 있고, 같이 일하는 게 즐거운 동료’들이 있는 곳을 찾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두 번째, ‘연봉과 복지’를 이제는 무시할 수 없다. 

20대에는 패기롭게 안정적이고 높은 수준의 연봉과 복지보다는 더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30대가 되어 가정을 꾸리고 아이도 낳아보니 현실적으로 연봉과 복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한 인터뷰에서 본인보다 못한 사람과 일을 하면 그저 난쟁이 소굴의 난쟁이가 되는 것이고, 본인보다 뛰어난 사람들과 일을 한다면 정말 성장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누군가는 ‘본인이 속한 어떤 집단에서 내가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면 나는 잘못된 곳에 있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더 나은 환경(즉, 뛰어난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이직해야 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현재 회사에서 지금까지 제가 해온 일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높게 봐주셔서 지금보다 더 높은 리더의 포지션으로 승진을 제안해 주셨습니다. 저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해 주시고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하면서 동시에 고민이 되었습니다. 진짜 내가 성장하고 뛰어난 사람이 되려면 ‘원래 계획대로 더 뛰어난 동료들이 있는 곳을 찾아 이직하고 성장의 기회를 찾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현재 새롭게 주어진 성장의 기회를 잡고 살려야 하는지 고민이 됩니다. 경력도 짧지 않기에 지금의 선택이 커리어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5년 뒤, 10년 뒤에 더 성장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 어떤 기준을 가지고 선택하는 게 좋을까요? 더 실력을 키우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전체적인 커리어 방향을 잡아야 할까요?





☕️


안녕하세요. 15년 차 직장인, 일하며 고민하는 사람 원지수입니다. 막막함은 있으되 막연함은 느껴지지 않는 고민이 님의 단단한 글을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었습니다. 언어를 다루는 일을 하다 보니 내용만큼이나 글 자체를 섬세하게 보는 버릇이 있는데, 고민이 님의 글에는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었어요. 그만큼 스스로의 고민을 ‘빵꾸’가 나도록 들여다보고, 매만지고, 수없이 가지치기를 하면서 잘 다듬어 왔다는 것이겠지요. ‘고민하는 힘’이 있는 (흔치 않은) 사람, 무척 반가웠습니다.


우선 축하합니다. 앞만 보고 일하다 보니 8년 차가 ‘되어버렸다’고 하셨는데, 8년 동안 꾸준히 앞을 보고 일하신 결과, 어느덧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네요.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하는 것’임을 알기에 묘한 흥분감도, 그와 동시에 정말 이 선택을 잘하고 싶다는 부담감도 있을 것 같습니다. 고민의 밤들이 많이 무겁지요. 저 또한 여전한 고민들로 매일 가슴 치며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시원한 정답을 드릴 수는 없겠지만, 고민이 님이 자신의 마음에 가장 가까운 한 발을 내딛을 수 있도록 몇 가지 함께 생각을 해보려고 해요.



첫 번째: 선택은 둘 중에 하나를 버리는 것일까요?

‘원래 계획대로의 대기업을 향한 도전’ vs. ‘지금의 자리에서 새롭게 주어진 성장 기회’ 두 가지를 놓고 고민 중인데요. 만약 지금의 새로운 기회를 잡기로(승진과 그로 인해 넓어진 책임을 감당하기로) 한다면, 다시는 대기업으로의 이직(뛰어난 동료들과 도전적인 과제들)을 생각할 수 없게 되는 걸까요?

우리는 보통 선택의 ‘기로’에 섰다고 생각했을 때, 그것을 ‘양자택일’로 생각하곤 합니다. 하나를 택하면, 다른 하나는 ‘가지 않은 길’, 즉 기회비용이 되어버린다고 말이죠. 그래서 어느 길로 가든 후회는 남을 거라는 걸 알고서 한 결정이라 해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집착은 선택의 순간 이후에도 내내 마음을 괴롭히곤 합니다.


일하는 사람으로 살아온 저의 지난날 또한 무수한 선택의 연속이었습니다. 세 번의 이직을 했고, 해외 취업을 꿈꾸며 유학을 다녀왔고, 고민을 하다 하다 뱉어낸 글들로 책을 출판했고, 소비재-광고-커피 업계를 거쳐 IT 회사에서 IT와 가장 관련 없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 와중에 저를 부르는 직업의 이름은 영업사원에서 카피라이터로, 콘텐츠 제작자로, 브랜드 기획자로, 그리고 또 다른 무엇으로 여러 차례 바뀌고 덧대어졌는데 지금은 일단 ‘브랜드의 내러티브를 이루는 무엇이든 만드는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 고민이 님은 제가 어떤 사람으로 보이시나요? 한 길을 꾸준히 판, 업계에서 대단히 성공한 사람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이런저런 경험을 하며 ‘꽤 성장한 사람’으로는 보일 것 같아요. 그렇다면 저는 매 순간 대단한 찍기 신공을 발휘해 성장하기 위한 정답만을 선택해 온 것일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 또한 고민이 님처럼 패기 넘쳤던 20대의 선택을 가슴 시리게 후회했던 적도, 내가 왜 그 돈으로 주식을 안 사고 유학을 다녀왔지 씁쓸해한 순간도, 내가 놓고 온 길에서 성공을 이룬 사람들을 보며 무너진 때도, 메아리 없는 이력서를 100장도 넘게 보내며 한없는 자괴에 빠졌던 시절도 있었어요. 하지만, 결국엔, 매 순간 성장하는 삶을 놓치지 않고 이어오고 있습니다. 내가 나의 ‘성장하고자 하는 고민’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선택이란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 길로 먼저 가 보느냐, 저 길로 먼저 가 보느냐, 지금 가느냐, 나중에 가느냐, 가다가 돌아올 것이냐, 이 길로 가다가 마음이 바뀌어 다른 길로 우회하느냐의 차이일 뿐 모두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기 위한 다른 방법들일 뿐이죠. 지금 당장 결정된 이직 자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우선 현 위치에서의 새로움을 받아들이고 그곳에서 또 자신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지켜볼 수도 있습니다. 초반 몇 개월간 최선을 다해 몰입을 해 보고, 어느 정도의 익숙함이 손에 잡히면 그때까지의 성장 경험을 토대로 다시 본격적인 이직 준비를 해도 되고요. 사실 그때가 되면, 나의 고민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선택은 점이 아니라 선이거든요. 그리고 그 선은 사방으로 뻗습니다.



두 번째: 내가 하고 싶은 성장은 ‘어떤 성장’인가요?

지금 회사에서도 분명 새로운 성장 기회가 주어졌다고 했는데요. 그럼에도 내가 ‘대기업에서의 성장’을 두고 계속 고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가 강연 등에서 보았던, 그리고 5년, 10년 뒤에 되고 싶은, 뛰어난 사람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가요? 한 분야의 전문가? 언변이 대단한 사람? 존경받는 리더? 다재다능한 인플루언서? 그렇다면 모든 대기업에는 꼭 그런 동료들이 넘쳐날까요? 어쩌면 내가 콕 집어 그런 ‘성장형 인간’들을 찾아다녔기 때문에, 그들이 속한 대기업 전체를 막연히 일반화하게 된 것은 아닐까요? 만일 그런 동료들이 주어진다면, 나는 내가 원하는 성장을 반드시 이뤄낼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있으려면, 나는 어떤 분야의, 어떤 조직에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면 좋을까요?


질문들이 다소 숨차지요. 물론, 조직의 규모가 클수록 뛰어난 동료들의 모수가 많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의 가짓수도 많을 겁니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대기업에서의 생활이 ‘내가 겪어보지 않은 경험이기 때문에 적어도 경험한 규모의 회사에서보다는 나를 성장시킬 것이다’라는 기대보다는, 내가 이루고 싶은 성장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 보고, 그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판단한 곳을 목표로 하는 것이 같은 선택을 하더라도 보다 큰 자기 확신과 이유 있는 후회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점이에요. 이직이라는 변화 역시 점이 아닌 선입니다. 선택의 시점 너머 하루하루 내가 살아가야 할 날들엔 조직의 규모, 동료의 역량만큼이나 ‘내가 어떤 업을 하는 사람인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저의 첫 회사는 존경받는 외국계 기업이었습니다. 뛰어난 동료들, 선진 기업 문화, 촘촘한 복지 등등 ‘누구라도’ 성장할 수 있는 회사임이 분명했지요.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퇴사 면담에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도 이곳에서 성장하는 것이 제가 하기 가장 쉬운 선택이라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여기에는 내가 가슴이 타도록 하고 싶은 ‘그 일’이 없어요.”

고민이 님이 가슴이 타도록 이루고 싶은 성장은 어떤 것인가요? 나는 ‘어떤 모습으로 뛰어나고 싶은지’, 찬찬히 답해보세요. 아마 고민이 님은 이미 답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답장을 써야 하는 마감일 늦게까지 열심히 생각과 말을 벼렸지만 결국 실질적인 도움이 될 조언보다는 너무 본질적인 이야기만 한 것은 아닌가 뒤늦은 염려가 됩니다. 아직 나누고 싶은 이야기의 반도 못했는데 이미 주어진 분량을 많이 넘어버렸다는 것도 깨달았고요.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모든 선택의 순간에 내가 ‘해볼걸’과 ‘괜히 했어’ 중에 어느 쪽을 더 마음 아파하는 사람인지를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선택은 늘 51:49라고 하죠. 내가 어느 쪽에 1점이라도 점수를 더 얹는 사람인가를 알면, 결정이 조금은 더 편안해질 거예요.


요즈음 저는 고민이 님과 반대로, 저만의 업을 만들고 단단히 하는 시간들을 먼저 거친 뒤, 초보 팀장이 겪는 시행착오에 끙끙대고 있습니다. 순서와 방법이 다를 뿐 일하는 우리 모두는 성장하고 있어요. 서두에 저를 고민하는 사람이라 적었지만, 사실 저는 스스로를 한 마디로 정의해야 할 때 ‘나아가는 사람’이라 표현합니다. 모든 고민의 끝은 언제나 선택이었고, 그 선택은 저를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 줍니다. 고민이 님의 고민하는 힘을, 나아가려는 마음을 믿어 보세요. 분명한 것은, 5년 뒤, 10년 뒤, 고민이 님은 지금 그토록 바라는 ‘더 성장한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고민이 님이 지금의 고민을 포기하지 않을 거니까요.


어느 쪽이든 다정하지만은 않을 새로움에 마주 설 고민이 님의 용기를 마음 깊이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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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에도 퇴근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고민 이야기. 일하는 우리들의 달고 쓴 천일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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