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 주니어의 커뮤니케이션 (1)
고민이ㅣ 2년 차 외국계 주니어 / 영업 & 마케팅
일을 시작한 지 2년, 이직한 지 3개월 차 접어든 고민이입니다. 일과 사람들은 나쁘지 않았지만 원하던 업계가 아니었던 첫 회사를 다니며 오랜 노력을 한 끝에 마침내 바라고 바라던 업계로 이직할 수 있게 되었는데요. 아직까지는 단 한 번도 이직을 후회한 적 없을 만큼 제가 정말 좋아하는 산업과 꿈꾸었던 분위기 속에서 하루하루 바쁘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허니문' 같은 시간 속에서도 저를 잠 못 들게 하는 고민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상사와의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저는 뉴비인 데다 주니어이기도 하고 업계 자체에 대해 제 또래 연차만큼 잘 알지 못해서 정말 매 순간 질문하고 싶은 것들 투성이인데요. 어디까지 상사에게 물어봐야 하고, 어디까지 제 선에서 알아서 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안 그래도 바쁜 분을 붙잡고 '내가 이런 것까지 물어봐도 되나?' 싶다가도, 만일 일이 잘못되었을 때 '왜 진작 물어보지 않았느냐'는 핀잔을 들을까 봐 덜컥 겁이 나기도 해요. 새 직장은 커뮤니케이션을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가 있는 것 같은데, 제가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됩니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많은 제가 어떻게 하면 상사를 실망시키거나 실수하지 않고, 커뮤니케이션을 잘할 수 있을까요?
'정말 좋아하는' 산업과 '꿈꾸었던' 분위기로의 이직이라니, 과거의 내가 본다면 눈물을 팡 터트릴 만큼 황홀한 입장이 되었는데 이제는 또 이 상황에서의 새로운 고민이 솟아났어요. 일에 대한 고민이란 게 참 이렇게 치사하리만치 끝이 없습니다.
커뮤니케이션! 그야말로 엄청난 주제입니다. 방금 찍은 느낌표 뒤에 바로 마침표를 찍고 도망가야만 할 것 같은, 직장 생활이 아무리 오래되었다 한들 그 누가 이것을 쉽게 '잘한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은, 어쩌면 일터를 떠나 우리 삶 전체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아마도 평생 쉽지 않을 주제죠. 앗, 시무룩하지 마세요. 원래 어려운 것이니 답이 없다는 엄포를 놓으려는 게 아니라, 내가 이 분야를 잘 몰라서, 갓 이직을 해서, 이 회사가 소통을 중요시해서, 지금 나한테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이야길 하고 싶었어요. 특히 내 아이디어의 '실행'을 위해서는 수많은 이들과의 협업이 필요한 상품 기획, 서비스 기획, 마케팅, 브랜딩 등 기획 직군의 경우 커뮤니케이션은 '잘하면 좋은' 일의 부수적인 측면이 아니라, 내 일을 잘하기 위한 '코어'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바꾸어 말하면 '어떻게 하면 내 일을 잘할 수 있는가' 하는 본질적 고민인 거죠.
자, 일단 오늘은 '인생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거대한 질문은 넣어 두고, 지금 가장 어려운 '상사에게 어디까지 물어봐야 하는가'에 대한 최선을 찾아봅시다. 앞서 커뮤니케이션은 평생 어려운 문제라 이야기했지만, 아직 일과 삶 모두에서 이런저런 기준점이 명확지 않은 주니어 연차에게 유독 더 어려운 것이 사실인데요. 질문할 일은 불쑥불쑥 수도 없이 생겨나는데 이걸 물어봐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을 때, 가장 쉽게 기준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져 보는 거예요. '나는 이 일의 결과를 책임질 수 있는가?'
제1 기준, '책임질 수 있는가'
평범한 단어인 듯한데 회사에 다니면서 새롭게 듣게 된 말들이 있을 겁니다. 이를테면 '의사 결정 사항'이라는 말. 말 그대로 어떤 사안에 대한 판단이 필요한 사항이라는 뜻인데요. 따지고 보면 모든 업무에서 의사 결정은 수시로 일어나는 것일 텐데, 굳이 의사 결정이 필요한 '사항'을 구분 지어 말하는 이유는 뭘까요?
회사에서의 '의사 결정'이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결정 → 실행]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결정 → 실행 → 책임]까지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누군가 "이건 의사 결정 사항이에요."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이건 이 결정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의 판단이 필요한 사항이에요."라는 뜻인 거죠.
우리의 고민인 '이걸 물어봐도 될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이것이 무엇이냐'는 'What'에 대한 질문이라면 그것과 관련된 부서의 담당자를 찾아 물어보거나, 사내 시스템 혹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정보를 스스로 찾아볼 수 있겠죠. '이것은 어떻게 할 수 있어요?/하면 돼요?'와 같은 'How to'에 대한 질문이라면 먼저 그 일을 처리해 본 경험이 있는 선배나 동료를 찾아 조언을 구해볼 수 있습니다. (사실 실무적인 것은 팀장님보다는 바로 위 선배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더 많죠) 가장 어려운 건, '이걸 이렇게 해도 되나요?' 하는 'Yes or No'의 판단이 필요한 경우입니다. 고민이 님이 어디까지 내가 '알아서'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바로 그 지점이요. 클라이언트가 무언가를 요구해 왔다거나, 담당하고 있는 거래처에 문제가 생겼다거나, 무언가 새로운 기획 아이디어가 생겼다거나. 음, 우선 '작은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고, '큰 일'은 상사에게 물어보고 진행하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일단 아직은 일의 경중을 스스로 따지기 어려울 것이고, 무엇보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그 판단의 결과를 '내가 책임질 수 없다면' 상사 혹은 그 일에 대한 책임이 있는 담당자에게 판단을 넘겨야 합니다. 회사에는 직급과 직책이라는 것이 있고, 각 직급/직책에 따른 '전결권'이라는 것이 존재하는데요. 더 높은 직급, 더 넓은 직책을 맡는다는 것은 그만큼 더 큰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흔히 말하는 '짬'이라는 것이 쌓일수록 이전에는 내가 책임질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을 알아서 처리하게 되는 측면도 있지만, 그에 우선해 예산, 절차, 원칙 등과 같은 정량적인 것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 역할에 따른 책임의 범위가 정해져 있어요.
평소에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의 의사 결정 체계, 그리고 나의 업무와 관련 있는 담당 부서를 잘 인지해 두고,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도움이나 판단을 청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파악해 보세요. '이 일로 인한 결과에 책임이 있는 곳은 어디일까?' 질문해 보면서요.
우리는 보통 책임이라는 말을 조심스러워합니다. 일상에서 "네 책임이야!", "네가 전부 책임져!"라며 무언가를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에 많이 하는 말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책임이라는 것은 그것이 잘 수행되지 않았을 때 이처럼 날 선 표현으로 활용될 뿐, 그 말 자체에는 묵직한 긍정의 힘이 실려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이 정도의 업무를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인정의 힘. 이 사람은 낯선 상황을 마주했을 때 그간의 경험과 이해를 바탕으로 최적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신뢰의 힘. 그러니 내가 아직 이런 힘이 부족할 때, 그 힘을 가지고 있다고 나와 조직이 믿고 있는 상사에게 그 판단을 청하는 것은 나의 모자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커뮤니케이션을, 일을 잘하는 방법입니다.
사실, 솔직히 주니어 때는 온전한 내 책임인 게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고민을 하는 후배들에게 '일단 헷갈린다면 무조건 물어보라'고 해요. 상사가 귀찮아하는 쪽이 나중에 문제가 생기는 것보다 나으니까요.
어, 그럼 결국 다 물어보라는 것인가요? 그렇게 물어보다가 상사가 나한테 실망하면, 내가 무능력한 바보처럼 보이면 어쩌냐고요?
그렇다면 이제 '질문을 잘한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볼 차례입니다.
> 주니어의 커뮤니케이션 (2)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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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에도 퇴근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고민 이야기. 일하는 우리들의 달고 쓴 천일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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