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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성은 귀납적으로 길러진다

004. '어떻게' 보다는 '어떤 분야를'

by 작은바이킹



“제가 전문성을 키우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최근 일 관련 고민을 나누는 자리가 있을 때면 종종 듣곤 하는 이야기다. 직장인들에게 전문성에 대한 고민이야 새로울 것이 없지만, 요즘의 이 말이 들을 때마다 생경하다 싶은 것은 그 고민을 하는 주체가 이제 일을 시작한 지 일이 년 남짓 된 사회 초년생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전문가(專門家)’란 본디 ‘어떤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 일에 종사하여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여기에서 포인트는 ‘상당한 지식과 경험’인데, 어떤 것이 상당해지려면 일단 시간이라는 절대 조건이 필요하다. 아직 무언가 충분히 쌓이기엔 이른 시기, 회사에서는 주니어라 불리는 연차에 이에 대한 고민이 짙은 것은 왜일까.


그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다양한 성공 케이스를 가까이 보며 자랐다는 데 있다. 80년대생인 필자의 학창 시절, 대단한 사람들은 모두 위인전이나 TV 속에 있었다. 그때도 ‘엄마 친구 아들’은 있었지만 대부분 학업이라는 분야에서 비슷하게 뛰어났고 그나마 자주 볼 일도 없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쥐고 성장한 지금의 20대는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이들의 다양하게 잘난 삶을 말 그대로 손안에서 숨 쉬듯이 목격한다. 소셜 미디어 속 또래들이 ‘인플루언서’라는 이름으로 여러 분야의 ‘전문가’로서 활동하는 모습은, 갓 사회의 출발선에 선 스스로의 성숙도를 조급히 고민하게 만든다.


또 다른 이유는 이들이 어릴 때부터 ‘전략적 성장’을 경험한 세대라는 것이다.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고등학교에 가서야 입시 전략을 세우곤 했던 때와는 달리, 2010년대 전후로 학창 시절을 보낸 세대는 ‘생기부’, ‘학종’을 줄곧 관리해야 하는 시스템 속에서 시기마다 필요하다는 학원들을 다니며 자랐다. 되고자 하는 상태를 정해 두고 그를 달성하기 위한 검증된 과정을 밟는 것에 익숙하다. ‘내가 전문성을 키우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말은 하루빨리 전문가가 되고 싶어 목마른 것이라기보다는,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전문가로 향하는 코스 위에 있는지 몰라’ 불안하다는 뜻에 가깝다. “모든 일에는 시간이 걸리니 일단 무엇이든 열심히 배우라”는 말이 곧이들리지 않는 이유다.


‘키운다’는 말은 무언가에 의도를 갖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자라게 한다는 의미에서 능동적이다. 반면 똑같이 성장을 표현하는 ‘길러진다’는 말은 지나고 보면 그렇게 되어 있을 것이라는 뉘앙스로, 언뜻 수동적으로 들린다. 전문성을 키우는 방법에 대해 능동적으로 고민하는 것은 좋은 태도다. 다만 전문성이란 1+2=3과 같이 연역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님을 이야기하고 싶다. ‘지금 당장 어떻게’보다는 궁극적으로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자 하는가를 찾아가는 과정, 다양한 경험 속에서 나라는 사람을 입체적으로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전문성은 귀납적으로 길러진다. 그 시간은 결코 수동적으로 흐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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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에도 퇴근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고민 이야기. 일하는 우리들의 달고 쓴 천일야화.





이 글은 2025년 5월 31일 자 한국경제신문 'MZ 톡톡'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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