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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량되지 않는 성장에 대하여

005. 어른의 체력장

by 작은바이킹



어릴 때 체육 시간을 싫어했던 것에는 그 자체의 힘듦도 있었겠지만 내가 운동을 못하는 아이라는 생각이 한몫했다. 지금의 학생건강체력평가(PAPS), ‘라떼’는 체력장이었던 연례행사를 치르는 날이면 번번이 나의 유연성과 근지구력과 순발력이 평균에 얼마나 못 미치는지를 낱낱이 점수 매긴 등급표를 받아 들곤 했다. 특급이나 1급에 속한 친구들에 비해 나처럼 계속 낮은 급수에 머무르는 친구들이 운동하는 시간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매년 몸은 자라 조금씩 더 세지고 빨라졌지만, 늘 기준보다 몇 센티미터 혹은 몇 초씩 모자라다는 등급표는 그간의 자람을 말해주지 않았다.


더 이상 의무적으로 힘과 빠르기를 테스트하지 않아도 되는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모두는 각자의 체력장을 치르는 중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젠 그것이 연례행사가 아닌 매일의 일상이라는 것, 치러야 할 시험의 종목이 ‘조직 생활 적응력’, ‘직무 전문성’, ‘사회적 영향력’ 등으로 대단히 심화되었다는 점이다. 모두 기르면 좋을 능력들이다. 기왕에 ‘특급’을 받는다면 삶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어른의 세상에서도 여전히 성장은 중요한 화두다. 조직 사회에 더 잘 적응하고, 더 차별화된 전문성을 가지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훈련하듯 다방면의 능력치를 갈고 닦는다.


문제는 그러한 비(非)신체적 능력들은 수치로 측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도 ‘당신의 전문성은 5cm 짧고, 적응력은 7초 느립니다’라는 식으로 말할 수 없기에 객관적인 성장의 정도를 가늠하기 어렵다. 정해진 기준과 등급에 따라 얼마큼이 늘었다, 혹은 모자라다 평가받는 것에 익숙한 어른들은 계량되지 않는 성장의 과정이 불안하다. 급수가 한 단계 올라가야만 비로소 ‘성장했다’ 인정받을 수 있었던 체력 테스트에서처럼, 손에 잡히는 성취가 주어지기 전까지는 스스로 성장하고 있음을 확신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종이와 운동장 위에서 치르던 시험과 달리, 삶이라는 시간 위에서 우리는 수많은 ‘모호한 종목들’을 경험한다.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유연성, 힘든 상황을 겪은 뒤의 회복 탄력성, 매일 똑같은 일상을 묵묵히 버텨내는 인내력, 하기 싫은 일을 지속하는 지구력과 같이 살아가며 길러지는 힘엔 애초에 기준도 평균도 의미가 없다. 등급표 위에서는 내내 운동을 못하는 아이였지만 사실은 계속 성장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겪어내는 것만으로 성장하는 삶의 근육이 있다. 이러한 모호한 성장을 알아차리고, 인정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자기 자신이다. 무엇무엇을 해낸 사람, 팔로워가 얼마 이상인 사람이 되는 순간이 아니라, 내가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인 것, 소중한 이에게 진심을 다하는 사람인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에 우리는 즐거이 성장한다.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계량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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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에도 퇴근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고민 이야기. 일하는 우리들의 달고 쓴 천일야화.





이 글은 2025년 9월 20일 자 한국경제신문 'MZ 톡톡'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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