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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바이킹 Jun 30. 2016

그래서, 직장인이 되었다.

01/  우리는 왜 죽을 만큼 간절했던 곳에서 죽을 것 같을까



적어도, 스물다섯 때쯤까지의 나에게 한 가지는 명확했다.

"어떻게 하는 게 잘 하는 것인가"


엄마 말을 잘 듣는 것

시험 성적을 잘 받는 것

언니와 싸우지 않는 것

좋은 대학을 가는 것

남들이 부러워할 직장에 가는 것

남들이 대단하다고 할 도전을 하는 것

등등.


나는 잘 하고 싶었고, 잘 하는 애가 되고 싶었고, 그래서 참 잘 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엄마 말을 잘 듣는 것에는 '공부 잘하는 애'가 되는 것과 '엄마가 아파트 입구에서 아줌마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사건'을 만드는 것, '또래보다 피아노 잘 치기' 등이 포함되어 있었고, 시험 성적을 잘 받는 것에도 '받아쓰기 백 점', '글짓기 대회에서 상 타기', '교실 뒤에 그림 걸리기' 등 여러 가지 세부 카테고리가 있었으며, 나는 모든 영역에서 '수'를 받기 위해 정말이지 모든 순간을 치열하게 애쓰며 살았다.


그래서, 직장인이 되었다.



'남들이 부러워할 직장' 카테고리에 속했던 외국계 회사 영업사원이 나의 첫 직장이었다. '외국계? 좋겠네!'와 '영업사원? 힘들겠네!' 두 가지의 반응을 모두 '참 잘했어요!'로 받아들이고 또다시 열심의 일상을 이어갔다. 그런데, 여기부터는 달랐다. 열심히 한다고 백 점을 받을 수 없었고, 노력이 보답을 받을 수 없도록 방해하는 수많은 비논리적인 요소들이 산재했으며, 무엇보다 '백 점'의 기준이 모호했다. 한 번도 기준 없는 레이스에 참여해 본 적이 없던 나는 당황했다. 3년이 조금 넘는 시간. 핸들을 펑펑 때리며 울고, 남자친구 멱살을 잡고 울고, 출근하자마자 톡-하고 나도 몰래 울고, 거래처에 소리 지르며 맘속으로 울던 수많은 낮과 밤이 지나갔다. 그리고, 깨달았다. 더 이상 '아무 영역에서나' 일단 백 점을 받고 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내가 백 점을 받고 싶은 것, 내가 잘 하고 싶은 것이 '어떤 영역인가'에 대해 가슴이 파이도록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또 직장인이 되었다.



종합 광고 대행사의 신입 카피라이터. 동기들이 모두 승진하던 날, 3년이나 다닌 멀쩡한 회사를 때려치우고 다시 전혀 모르는 분야의 신입사원으로 입사한다는 결정. 이번엔 '남들이 대단하다고 할 도전'의 카테고리였다. 일 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치열히 고민하고, 부딪히고, 아파하며 내린 선택과 노력의 결과였기에 이번에야말로 내게 남은 건 '더 잘 하면 되는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다시 3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숨도 안 쉬고 지나갔다. 나는 또 울었고, 힘들 때마다 미친 듯이 밀려드는 후회와 후회하지 않으려는 마음 두 가지를 양 손에 들고 괴로워했으며, 하루에도 수백 번씩 드는 '못해먹겠어!'라는 마음과 머리채를 잡고 싸워야 했다('못하겠다는 말을 못 하겠어!').


왜?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행복하다며. 분명 원하는 걸 찾으려 고민했고, 꿈을 찾아왔는데. 왜 난 또 힘들어? 시작할 땐 다 괜찮을 것만 같았던 모든 상황이, 왜 지금의 나는 하나도 괜찮지 않은 거야? 어디에나 싫은 사람과 싫은 상황이 있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는데도, 왜 난 지금 이 사람과 이 상황이 싫어 죽겠는 건데?


그래서, 또 다른 직장인이 되면 되는 건가?



직장생활 7년 차, 한 번의 이직, 먼지처럼 켜켜이 쌓인 고민들.

아무리 묻고, 아무리 가슴이 똥이 되도록 괴로워해도 마음 한구석을 계속 짓누르는 이 '진로 고민'이라는 녀석은 어쩐지 한 물음 한 물음 답을 찾아갈수록 털어지기는커녕 그 세를 점점 확장해가는 느낌이다.


'3, 6, 9의 법칙', '3년 차 꼰대' 같은 말처럼 이것은 정말 직장인이니까, 직장인이라면 당연히, 어깨에 마음에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짱돌 같은 걸까. 힘들어도, 마음이 받아들이질 못해도, 당장 죽을 것 같아도, 직장인이니까. 너만 그런 거 아니니까. 다들 그렇게 사는 게 직장생활이니까. 매일 6시에 눈을 뜨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니까.

그러니까 괜찮은 거야?



생각해보자. 지지 말고 더 얘기해 보자.

직장인, 우리의 하루하루를 완벽히 행복할 수 없도록 방해하는 '이것'은 정말 대체 무엇인지.

왜 우린 한때는 분명 죽을 만큼 간절히 원했던 곳에서, 이렇게 죽을 것 같은지.





| 신입 영업사원, 신입 카피라이터로 두 번 입사한 7년 차 직장인. 여전히 변비 같은 진로 고민 진행 중.


cover photo/ 2016년 5월, 대한민국 양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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