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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바이킹 Jul 04. 2016

그러는 당신은, 그래서 행복하냐?

02/  우리를 막아 세우는 수많은 do와 don't들



3년 채울 때까지는 그만두지 마

대리 달 때까지는 그만두지 마

월급 몇십만 원 차이 나는 걸로는 움직이지 마

사람 때문에 그만두지 마 그게 제일 바보 같은 거야

자꾸 여기저기 옮기지 마 끈기 없어 보여

유학? 다녀와선 뭐할 건데. 도망가지 마

한 직장에서 10년은 있어 봐야 그래도 뭐가 좀 보이는 거야

버티는 사람이 이긴다, 그러니까 일단 버텨

야, 그만두고 거기 갈 거면 그냥 좀 참고 다녀

회사가 다 똑같애, 그나마 여기가 나은 거라고 생각해

내 말 잘 새겨 들어라, 다 너 생각해서 하는 얘기야.



MC 민지는 쇼미더머니 예선에서 외쳤다. 웃지.뫄아!!!!

하루에도 수십 번, 눈빛 똘망한 후배들에게 저렇게 수많은 '하지 마'와 '해야 해'를 시전 하는 분들께 나도 외치고 싶다. 웃기지.마!!!!!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본인들도 어디선가 들었을 말들을 그냥 그대로 물려주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이지 화가 난다. 명치끝에서부터 펄펄 끓는 질문 하나가 치밀어 오른다. 왜요? 왜 그래야 하는데요? 아니 무엇보다 왜, 저 중에 하나도 시도해 본 적 없는 당신이 그런 말을 하는 건데요?



어느 날 우리가 '저 그만두고 싶어요'라는 말을 꺼냈을 때, 기다렸다는 듯 쏟아질 수많은 질문과 조언들. 지인 중 하나는, '그 말들에 모두 대답할 자신이 없어서' 그냥 회사를 다닌다고 했다. 그럼 '그래서, 그만두고 뭐 할 건데?'로 시작되는 그 많은 말들 중 진짜 나를 위해서 하는 조언은 얼마나 될까? 냉정히 말하면, 거의 없다. 사실 있는 게 더 이상하다. 고민이 깊을수록 더 많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게 되고, 그 많은 이들이 모두 다 내게 엄마나 절친과 같은 마음으로 얘기하진 않으니까. 그럼 왜? 마치 뒤돌아 보면 돌이 되는 절대 금기를 건드린 것처럼, 소스라치며 서로를 막아서는 저 '디렉팅'은 대체 왜 하는 걸까?



경험상 더 강하게 이직, 혹은 퇴사를 말리는 사람일수록, 한 번도 이직을 해본 적 없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야 여태까지 버틴 스스로가, 자신의 지난 시간이, 지금의 그 자리가, 맞는 것이 되니까. 잘한 것이 되니까. 첫 직장을 나올 때, 평소에는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일제히 내 앞날 걱정을 해주기 시작했다. 신입으로 가도 괜찮겠니, 그냥 좀만 더 버티지, 혹시 내가 뭐 서운하게 했니? 회사가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서 삐져서 그래? 등등. 그들 대부분은 그 직장이 첫 직장인 사람들이었고, 정작 한두 번 둥지를 옮겨 본 사람들은 크게 많은 걸 묻지 않고 그저 내 등을 툭툭 두드려 주었다. 그래, 한번 잘 해 봐. 근데 너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건 알지? 그래, 툭툭. 그래도 한번 해 보는 건 좋은 거야. 잘 한번 해 봐. 툭툭.



지금은 펄쩍 뛰며 나의 고민을 말리는 그도 사실은 직장생활을 하는 내내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똑같이 선택의 기로에 섰을 것이고, 비슷한 고민을 하며 답을 구했던 시기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그런 시간을 지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섣불리' 그러지 말라고 한다. 망설임 때문이든, 두려움 때문이든 자신은 그 선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적어도 지금까지는.)

아예 근거 없는 만류는 아니다. 본인이 해 본 적은 없더라도, 먼저 회사를 그만두고 나간 사람들의 실패 사례를 보며, 후회를 보며, 간접적으로 느낀 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안심했을지 모른다. 그래, 나는 잘 버티고 있어. 나가지 않길 잘 했어. 시도해보지 않길 잘 했어. 나는 뒤쳐지거나 정체되고 있는 것이 아니야. 열심히 버텨내고 있는 거야.



어쩌면 우리는 괴로워하는 타인에게 '자신과 같은 선택을 하라는' 조언이란 것을 하면서 스스로의 현재 인생을 합리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날 진정으로 위하는 가족들, 친구들의 소중한 관심은 당연히 예외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작 일이 년 다닌 직장을 때려치운다는 사실이 '잘못'이 아닌 것처럼, 한 직장에서 십 년 이상 우직하게 버티고 있는 당신의 인생도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이 후배 저 선배에게 내가 가진 잣대를 열 올리며 설명하지 않아도, 굳이 다른 선택을 까내리거나 뜯어말리지 않아도 당신이 지금껏 해 온 선택들은 타인의 가치관과 상관없이 충분히 가치 있고 타당한 것들이었다. 굳이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선택을 하는가 마는가에 많은 의미를 두면서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자. 그러기에 당신이 걸어온 길은 결코 가볍지 않다.



물론, 그냥 이쪽 힘든 현실이 싫어서 저쪽 힘든 현실로 갈아타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겐 질책과 충고가 필요하다. 다만 그것이 진심으로 그 사람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말하는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것인지 한번 돌아보면 좋겠다. "해/하지 마"라는 화법은, 누군가의 삶에서 엄마 정도의 레벨을 갖고 있지 않은 이상 함부로 구사해선 안 된다. 아무리 실패가 너무 뻔히 보여도, 그 인생 하나 구제해 주고 싶어 미치겠어도 마찬가지다. 그 멍청이가 짚단을 지고 불구덩이에 뛰어들든, 그래서 그 인생이 망하든, 망해서 누굴 원망하든 그것 또한 그가 선택한 그의 인생이니까. 감당 또한 그의 몫이다.




오늘도 내 고민을 비웃으며 그저 버티라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그러는 당신은, 그래서 너는 지금 XX 행복하냐?




아무래도 쇼미더머니를 너무 많이 본 것 같다.





| 신입 영업사원, 신입 카피라이터로 두 번 입사한 7년 차 직장인. 여전히 변비 같은 진로 고민 진행 중.


| cover photo/ 2012년 12월, 체코 체스키 크룸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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