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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바이킹 Aug 11. 2016

첫사랑에 실패해도 괜찮아요

06/  미운오리 첫 직장 놓아주기



요즘 tvN 삼시세끼에 나오는 '손오리'들이 참 귀엽다. 날 때부터 사람 손을 타서인지, 매일 보는 것도 아닌 연예인들을 엄마 보듯 졸졸졸 뒤뚱뒤뚱 따라다닌다. 특히 처음 만난 손호준씨를 콕 찍어 엄마처럼 따른다는 설정에서, 별명도 '손오리'다.


새끼오리의 각인.

갓 태어난 오리가 처음으로 본 움직이는 물체를 어미로 인식하고 본능적으로 쫓아다니는 것을 이르는 말이라 한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아임 유어 마더"하며 자기소개를 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오리처럼 생기지도 않았는데 단지 내가 처음 본 생물이라는 이유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저 자가 내 운명이라 믿는 새끼오리들. 금요일 밤 예능의 이 풍경이 어딘지 낯설지 않다면 그것은 당신이 직장인, 그것도 어떻게든 처음 만난 직장이라는 곳에 자신을 끼워 맞추기 위해 필사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미운오리 직장인이란 이야기다.




모든 '처음'은 세다

직장에 들어오기 전까지, 우리의 인생에서 대부분의 단계는 '하나'였다. 유치원으로 들어가 대학을 나오기까지, 모든 것은 각각 하나의 단계로써 처음 만난 것이 곧 그 단계에서의 마지막이 되었다. 전학을 많이 다녔다 해도 어쨌든 6년이 지나면 초등학교라는 하나의 단계가 끝났고, 3년을 다니면 중학생이라는 단계는 인생에서 다시 반복되지 않는 유일한 것이 되었다. 따라서 모든 곳에서 처음 보고, 듣고, 배우고, 만난 모든 것은 우리에게 있어 그곳에서의 절대적인 가치와 기준처럼 여겨졌고, 그것은 그 단계뿐만 아니라 그 시작점으로부터 인생 전반에 걸쳐 쭉 강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처음 사귄 친구, 처음 먹어 본 피자, 처음 읽은 책, 처음 마셔본 커피, 첫 해외여행, 그리고 첫 키스. 몇 가지만 늘어놓아도 금방 깨달을 수 있듯, 모든 '처음'이 가지는 힘은 굉장히 세다.


그래서, 우리는 '첫 직장'을 쉽게 부정하지 못한다.



직업이 5개였던 아줌마

8년 전, 캐나다에서 만난 홈스테이 아줌마는 참 희한한 사람이었다. 당시 나이가 우리 나이로 환갑이었는데, 뭐 하는 분이세요? 라는 말에 대답할 수 있는 옵션이 상당히 다양했다.


우선 내가 홈스테이로 있으니 홈스테이맘이 직업이다. 그런데, 집 1층에 예약 손님을 받을 수 있는 1인용 미용실이 있다. 미용사 추가. 취미로 요가와 드래곤 보트(카누와 비슷한 익스트림 스포츠의 한 종류)를 하는데, 사실 드래곤 보트는 취미라기엔 너무 본격적인 조직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그럼 그것도 추가. 가톨릭 신자였던 아줌마는 또 다니는 성당에서 용돈 정도를 받고 복지관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복지사 업무 추가. 2살 남짓한 손자와 그 또래 아이들을 봐 주고 있었으니 아이 돌봄 일 추가. 모두가 정확한 보수를 받고 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본인의 아이덴티티라 표현할 수 있는 직업이 다섯 개나 되었다. 옆방 브라질 친구는 또 어떤가. 스물셋이었던 그녀는 자기의 '현재 직업'은 영양사이며 그것에 꽤 만족하지만 '앞으로' 또 얼마나 다양한 직업을 갖게 될지는 모를 일이라고 했다.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나는 이런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이야'라는 명함을 한번에 만들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는 것. 대신, '나는 이 일을 통해 어떤 사람이 되려 하는가'에 집중하고 있었다.



시작이 너무 어려운 나라

생각해보자. 오늘의 내가 되기까지 내가 얼마나 애를 썼는지. 조금 전 치를 떨며 퇴근한 그곳에 출근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내가 얼마나 많은 날들을 생명을 깎아 가며 노력했는지. 우린 뭐, 직업 다섯 개 아니라 열 개라도 갖기 싫어서 안 갖나? 어려워서 그렇지. 무언갈 해보고 그만두고 다시 시작할 수 있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말이 안 되게 힘들어서 그렇지.

학교건 직장이건, 들어가기가 너무 어려운 나머지 '일단 들어가는 것' 이 모두에게 목표가 되어버렸다. 들어가서 뭘 해보고 싶은지, 나오게 된다면 또 어떤 무엇을 시도해 볼 수 있을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일단 시작할 '자격'을 갖추는 것. 나가는 건 일단 모르겠고 저 출발선 까지는 어떻게든 남들과 줄을 맞춰 서는 것.



이렇게 출발선이 결승점이 되어 버린 상황에서 우린 그 노력의 결승점-사실은 출발선-에서 만난 소중한 첫 직장에 집착한다. 학교는 그나마 들어가기만 하면 정해진 끝이 있는데, 직장이란 건 내가 끝을 내야 비로소 끝이 생긴다. 게다가 어딘가에 '들어갔다는 것'은 들어간 그 시기가 지난 후엔 긴 직장생활을 하는 데 당황스럽게도 큰 영향력이 없다. 그래서, 일단은 과거의 공식대로 노력해서 얻어 낸 나의 첫 직장에 최선을 다해 나를 맞춘다. 그것이 다행히 잘 들어맞는다면 좋겠지만, 몇 년을 참고 견뎌봐도 이 오리들이 진짜 내 엄마아빠가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오늘도 그곳에 간다. 내가 노력했던 수많은 과거의 순간들과 현재의 인내력에 꾸역꾸역 기대 가면서. 마치 서로가 이미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는데도 첫사랑이라서, 같이 처음 해본 것들이 너무 많아서 쉽게 헤어지지 못하는 연인들처럼.



미운오리새끼의 현실

미운오리는 연못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서야, 눈물이 터져 나올 만큼 깜짝 놀라며 깨닫는다. 아, 나는 다르구나, 이 곳과 이 사람들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구나, 그래서 내가 그렇게 힘들었구나!

살면서 혹 다른 이에게 뒤쳐지거나 어울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 집단의 잘못이 아니라 나의 잘못인 것처럼 여기지는 않았는가? 진짜 내가 누구인지 연못에 한 번 비춰볼 새도 없이, 지금도 그저 무작정 다른 이들과 섞이기 위해 숨이 턱에 차도록 따라가고 있지는 않은가?

풀숲에 숨어 가엾게 엉엉 울던 미운오리에게 어디선가 기적처럼 백조들이 다가오고, 그는 곧 자기가 사실은 '미운' 오리가 아니라 오리와는 '다른' 백조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는, 진짜 자기의 무리들과 함께 (아마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울고만 있는데 하늘에서 갑자기 내 정체성이 뚝 하고 떨어지는 그런 일은, 현실에서는 기적이라는 말 그대로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현실의 미운오리인 우리들은 나와 어울리는 곳, 내가 나답게 쓰일 수 있는 곳, 내가 나라는 이름표를 붙이고도 훨훨 날 수 있는 곳을, 내 스스로의 날갯짓으로 씩씩하게 찾아가야 한다.



처음이 곧 전부일 필요는 없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은 시인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을 만큼 강렬했지만, 직장인의 운명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다. 첫사랑에 실패했다고 해서 당신의 인생에서 사랑이 쫄딱 망한 것은 아닌 것처럼, 첫 직장이 나와 맞지 않음을 깨달았다고 해서 당신의 커리어 전부가 망한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 처음은 세다. 무시할 수가 없다. 아마 당신이 직장생활을 계속하는 한, 첫 직장에서의 기억, 배움, 습관, 사람 등등은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첫 직장이 당신의 전부가 될 필요는 없다.



첫사랑과 헤어져도, 괜찮습니다.

사랑은 반드시 또 오니까요. 어쩌면, 더 끝내주는 사랑을 할 수도 있습니다.

 

끝사랑을 아직 만나지 못했어도, 조급할 필요 없어요.

당신은 앞으로도 계속, 사랑을 할 거니까.





| 신입 영업사원, 신입 카피라이터로 두 번 입사한 7년 차 직장인. 여전히 변비 같은 진로 고민 진행 중.


cover & body photos/ 디즈니 애니메이션 'The Ugly Duckling(1939)'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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