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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바이킹 Jul 20. 2016

당신이 사표를 쓰기 전에 써 두어야 할 것

05/  벼랑 끝에서 잡고 견딜 '단 하나'를 남겨둬라



이직 후, 나처럼 회사를 옮기거나 그만두려는 친구들이 종종 나를 찾아왔다. 다들 힘들게 큰 결심 했지만, "여긴 천당, 바깥 지옥"이라는 주변의 만류-정확히는 여긴 '덜 지옥'이라는-에 혼란을 겪고 있었다. 그것이 가벼운 칭얼거림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경우 나는 두말없이 그들의 결정을 절대적으로 지지해 준다. 뭐 큰일 날 일이라고. 아무런 대안 없이 휙 그만두고 마는 결정도 그만의 의미가 있을진대, 이미 다른 갈 곳 혹은 할 일을 정해 둔 사람을 굳이 그게 최선이냐며 끌어앉힐 필요가 무엇이 있나. 약간의 파이팅이 오간 후, 공통적으로 내게 '옮기니까 좋아?' '거긴 더 낫지?' 등을 묻는다. 아마 '응! 옮기니까 대빵 좋아. 지옥이 아닌 곳도 있긴 있더라구!' 라는 말과 함께 본인의 결심에 대한 확신을 얻고 싶어서일 것이다. 나는 대답한다.


아니! 여기도 전쟁이야.

다만, 나는 내가 왜 이 전쟁을 하는지 알아.




너의 '최소한'은 무엇입니까

기대하지 않았던 답을 들은 상대는 일단 멈칫한다. 나는 이어 묻는다. 그곳으로 가려는, 혹은 가지 않으면 안 될 가장 큰 이유를 너 스스로 알고 있느냐고. 이것은 그의 결정의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정말 묻는 것이다. '최소한 이랬으면 좋겠어', 혹은 '최소한 이건 아니었으면 좋겠어' 하는 하나의 강렬한 유인이 있는지, 무엇보다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인지하고 있는지를.


변화에 대해 내가 기대하는 '최소한'을 알고 있다는 것은, 어느 날 나의 새로운 전쟁터에서 마음이 미친 듯이 널을 뛸 때 붙잡고 견딜 한 가지가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결국 그 생활을 얼마나 지속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그러니 발을 떼기 전에 미리 질문해 보자는 거다. 이 결정에 있어 내게 '가장 중헌 것'은 무엇인지. 최소한 연봉이라도 맘에 들게 받는다든가, 최소한 배울 것이 있는 곳이라든가, 최소한 저녁이 있는 삶이 보장된다든가, 최소한 그 XX 같은 또라이는 없어야 한다든가. 그것이 무엇인지는 중요치 않다. 옳고 그른 것이 없다. 당신이 그렇다 생각했으면 그런 거다. 다만, 그 이유를 자신 스스로 분명히 알고 있는가는 중요하다.



일비(一悲) 보다 더 위험한 일희(一喜)

사회생활이 처음이었던 친구가 주변 환경 때문에 힘들어할 때 해주었던 말이 있다. 어렵겠지만, 최대한 일희일비하지 않도록 노력해봐. 안 그러면 이리저리 휘청이느라 원래 힘들어야 할 몫보다 더 많이 힘들어야 할 거야.

사회에서의 시간이 어느 정도 쌓이면, '일비' 하지 않는 데엔 조금씩 굳은살이 붙는다. 워낙에 맘 같지 않은 일들로 가득한 것이 사회생활이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러다 보니 어쩌다가 내 맘처럼 풀리는 작은 사건에 너무나 쉽게 '일희' 하게 된다는 데 있다. 어, 좋아하는 게 왜 나빠?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나쁠 게 없다. 하지만 당신이 변화를 준비하고 있었다면 사실 기준 없는 '일희'는 독이 될 수 있다.


마음속에 내 변화에 대한 명확한 이유 하나가 없으면, 아무리 견고한 결심의 둑을 쌓았더라도 잠깐의 달달한 상황 한 번에 와르르 무너지기 쉽다. 그리고는, 신기하게도 불과 조금 전까지 지옥 같았던 이곳이 어쩐지 조금 괜찮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 정도 힘든 건 어딜 가나 마찬가지 아니겠어? 뭐... 생각해 보니 여기도 나쁘진 않은 것 같아.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은 예의 그 지옥 같은 이유로 또다시 무너진다. 내가 왜 그때 옮기지 않았을까를 후회하면서.



나만의 이유는, 무적 방패다

지금 당장 힘들게 느껴지는 모든 크고 작은 상황들을 '내가 이걸 그만두어야 할 이유'에 갖다 붙이지 않은 당신은, 속으로부터 꽝꽝 잘 단련된 강호의 고수다. 그렇게 현재를 잘 견디며 맹렬히 고민해서 찾아낸 나만의 이유는, 내 안에서 단단한 뿌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내가 선인장인 걸 알았다면, 선인장에 영향을 주는 환경만 신경 쓰고 대처하면 된다. 내가 선인장인데 꿀벌이 오지 않는다고 조급해하거나 나랑 상관도 없는 옆동네 비 소식에 일희일비할 일은 없는 것이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내가 왜 이 전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날아오는 모든 공격에 휘청인다면, 또다시 이래서 힘들고 저래서 그만두고 싶은 과거를 반복하게 될지 모른다.


그 어떤 강심장이 그 어떤 꽃길로 자리를 옮기더라도 언젠간 반드시 후회를 하든, 이전보다 더 큰 시련이 닥치든 어쨌거나 '나 어떡해!' 하며 벼랑 끝으로 몰리게 될 순간은 온다. 그때, 이럴 줄 알고 미리 탄탄히 준비해 둔 나만의 무적 방패를 꺼내 들자. 내 마음이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지 않도록 나를 꽉 잡고 버티게 해줄 그것, 그 어떤 풍랑을 뚫고 가다가도 가끔 돌아보며 안심할 수 있게 해 주는, 나만의 소중한 이직 이유.



그것이, 당신이 사표를 쓰기 전에 마음속에 먼저 써 두어야 할 한 줄이다.





| 신입 영업사원, 신입 카피라이터로 두 번 입사한 7년 차 직장인. 여전히 변비 같은 진로 고민 진행 중.


cover photo/ 2014년 12월, 대만 타이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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