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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바이킹 Aug 18. 2016

비교의 늪

07/  '내 인생 사는 것'에 자신감이 붙는다면



뭘 잘못 먹었나, 야근을 줄창 했더니 변비가 왔나.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아랫배에 꾸욱 꾹 못마땅한 느낌이 든다.


'아니 쟤는 똑같은 월급 받고 왜 맨날 칼퇴야?'

'저 인간은 옷을 또 샀네. 난 월세 내기도 바빠 죽겠는데'

'아오, 나도 저런 환경이었음 더 잘할 수 있었어'

'누구는 좋겠네, 팀장 잘 만나서 저렇게 인정도 받고.'


명치끝에 코르크 마개라도 씐 마냥 갑갑한 느낌은 퇴근 후 스마트폰을 쥐고서도 계속된다.


'저 사람은 팔로워가 왜 저렇게 많지'

'어멈머 얘네 좀 봐, 언제 저렇게 집을 꾸몄대?'

'뭐? 사업? 아주 노났네 노났어. 부모 자알 만났지'

'나만 빼고 다 해외에 있나 봐. 뭐 어디 일본이라도 다녀와야 하나…'


아.. 씨.. 왜 이렇게 배가 아프지?




/

사촌이 땅을 사서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있는, 아니 직장인이 아닐 때부터 우리가 평생 달고 살아온 증상, '만성 배아픔.' 이것은 일찍이 조상님들이 남기신 말처럼 정말 사촌이 땅을 사서 그렇다. 이 사촌의 소식이란 게 애매한 것이, 그때그때 대놓고 비교당하는 엄마 친구 아들도 아니고, 쟤 좀 봐라! 하면 쟤가 어쩌고 있는지 건너다볼 수 있는 앞집 딸도 아닌 거다. 사촌의 이야기는 어쩌다 불쑥 '그랬다더라' 하고 바람결에 실려 솜사탕처럼 부풀려지고 채색되어 날아오는 경우가 많다. 사실은 사촌이 산 땅은 참 별 게 아닐지도 모른다. 혹은 나와는 비교도 안 되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일군 소중한 한 뙈기일 수도 있다. 그래도 어쨌든 부럽다. 어쨌든 타격감이 있다. 그 참기 힘든 '남 잘 되는 꼴'이니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남이 나보다 잘 되는-먼저, 혹은 더- 경우를 싫어도 좋아도 계속 보아야 한다. 태어난 날의 발 크기부터 온갖 비교에 푹 쩔어 살아온 우리의 속을, 나보다 먼저 땅 주인이 된 남 이야기는 그렇게 자꾸 쿡쿡 쑤신다.



/

넌 참 쉽다


'본의 아니게' 부모에게 많은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 온 사람, 큰 노력 들이지 않고도 두루두루 사랑받고 큰 사람, 그래서 성격도 둥그러니 좋은 사람. 주변을 둘러보면 어찌나 그렇게들 쉬워 보이는지. 오늘 하루도 발가락 끝까지 힘주어 버텨 낸 내 눈에, 세상은 유독 나한테만 짠 것 같다.


‘넌 참 쉽다’는 말은 하기는 쉽고 듣기엔 불편하다. 즉 남의 과정은 쉬워 보이고 결과도 인정하기 싫지만, 누가 내 노력과 성과를 폄하하면 당장에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거다. 그렇게 세상을 노려보다 보면 어느새 한 겹 한 겹 얄팍한 피해의식이 쌓인다. 너무 앞만 보지 말고 가끔 옆도 둘레둘레 보라는데, 옆을 보면 웬걸 다들 나를 앞서 달려가고 있다. 다른 이의 보폭에 신경이 곤두선다. 나보다 노력하지 않은, 나보다 좋은 환경을 가진 누군가가 이뤄낼 어떤 성취라도 속이 쓰리다. 아픈 배를 움켜쥐고 축하의 말을 건네는 혀 밑에는 이 모든 걸 합리화해줄 한 마디가 맴돈다. '넌, 참 쉽다'


내 갈 길보다 남의 길이 더 먼저 보이니 나의 목적지로는 점점 더 가기 어려워진다. 자꾸만 맘 속에서 남들이 나를 앞선다. 사실은 나와는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인데도, 그들이 그들의 목적지에 나보다 먼저 닿을까 자꾸만 의미 없는 종종걸음을 친다.



/

비교할 걸 비교하자


그럼 비교란 무조건 갖다 버려야 할 나쁜 놈인가? 적절한 경쟁심이 더 나은 결과를 낳기도 하는 것처럼, 마땅한 비교는 좋은 자극이 된다. 다만, 덮어놓고 오만 것을 다 비교해대면 곤란하다.

물론 돈은 저만큼 많으면 좋겠고, 기왕이면 누구처럼 승진도 빠르면 좋겠고, 동시에 저 사람처럼 자기관리도 쩔어 주었으면 좋겠고, 모 동기처럼 편하면서도 결과가 좋은 팀에 속하고 싶고, 옆 팀 교포처럼 영어 천재도 되었으면 좋겠다. 헌데 이 모든 것들은 사실 'nice to have'다. '그랬으면 좋겠다'인 것이지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내 인생의 목표는 아닌 것이다. 묻자. 그래서,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은 '쟤처럼' 사는 것인가?


내가 하지 못한 것과 하지 않을 것을 구별해야 한다. 비교 자체가 아니라, 어차피 할 마음도 없었으면서 남이 이룬 성과를 무조건 질투하거나 평가절하하는 비겁함을 버려야 한다. 팀 배치라든가 타고난 환경이라든가 하는 내가 바꿀 수 없는 조건들에 분개하는 억울함도 넣어 두자. 정말로 비교해야 할 것을, 잘 비교하며 가는 것이 나의 정신 건강과 인생 전체에 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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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화가 나는 걸


근데 누가 그걸 몰라서 이렇게 끙끙 앓는가? 누가 뭐래도 화가 나는 건 화가 나는 거다. 사실 이 글도 부아가 치밀어 쓰기 시작했다. 직업상 토 나올 정도로 생각을 거듭해야 하는 나의 경우엔, 고민의 깊이보다는 영리한 포장 기술로 본인의 존재를 짠! 하고 잘도 드러내는 이들을 보면 속에서 천불이 난다. 진짜 대단한 사람이 대단해졌으면 좋겠는데, 어쩐지 대단해지는 것 자체가 목적인 사람들이 더 빨리 성공하는 것 같다.


누구나 나처럼 타인에게 '빡치는 포인트'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쟤처럼 되고 싶다'를 넘어 '쟤는 왜 저래!'하고 열이 확 뻗치는.

고민을 하자. 내가 남들이 뭘 하고 살건 흥 하고 마는 강한 멘탈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그럴 때일수록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각잡고 고민을 해보자. 내 인생에서 어느 정도까지 타협을 할 수 있고, 어느 정도부터 적절한 자극을 허용할 것인지. 나는 어떻게 생긴 길로 가려고 하는지. 내가 원하는 인생의 색은 무언지. 카테고리를 나누어 하나씩 하나씩 나만의 답을 만들어 두자. 물론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현답은 쉽게 나오지 않겠지만, 점차 외부 요인에 대한 중심이 잡혀 가는 느낌이 들 것이다.



/

양팔 벌려 좌우로 나란히


타인과의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은, 비단 물리적인 공간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24시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나만의 정서적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지금의 환경에서, 타인의 하루와 나의 하루를 잘 분리해서 들여다보는 일은 중요하다. 남들 인생이 보이는 SNS가 아닌 공책에 한 줄 일기를 써본다든가,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나만의 공간에서 책을 읽거나 사색에 잠겨 본다든가 하는. 그렇게 점점 '내 인생 사는 것'에 자신감이 붙는다면, 그 어떤 '배 아플 일'이 눈앞에서 벌어져도 감히 나의 소중한 삶에 스크래치를 내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 내 마음속에 방치된 ‘자존감’의 팔을 번쩍 들고, 할 수 있는 한 가장 크게 외치자.


"기준!"



가고 싶은 길이 있으면, 다른 길을 건너다보지 않는다.

살고 싶은 삶이 없으면, 세상의 모든 삶과 내 삶을 비교하게 된다.





| 신입 영업사원, 신입 카피라이터로 두 번 입사한 7년 차 직장인. 여전히 변비 같은 진로 고민 진행 중.


cover photo/ 2010년 12월,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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