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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바이킹 Jul 31. 2017

이 산이 아닌개벼

21/  시계는 방향을 모른다



소설가 김영하 씨의 산문집 「말하다」에는 그가 대학 시절 학군후보생을 중간에 그만둔 때의 일화가 나온다. 당시만 해도 학군단을 거쳐 장교로 임관하면 전역과 동시에 대기업으로의 취업이 보장되었는데, 그 꿀보직을 그만둔다니 당연히 주변은 발칵 뒤집혔다. “지금까지 해온 게 아깝지도 않냐?”는 동기들의 말에, 미래의 베스트셀러 작가 김영하 군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아니,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아까워.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

장래 없는 장래 희망 


후, 멋지다. 20대 초반에 벌써 '내 길'을 찾겠다며 대차게 돌아서는 저 담대함. 그는 본인이 그럴 수 있었던 이유로 지금과는 달리 미래에 대한 여유가 허락되었던 당시의 시대상황을 들었는데, 어쨌거나 그 시대의 모든 사람이 자신의 길을 찾는 축복을 누린 것은 아니었기에 여전히 청년 김영하의 확신은 멋있고, 부럽다.


내가 기억하기로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무엇이 내 길인가?' 하는 질문이 나타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유난히 머릿결이 찰랑이던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날의 0교시를 마친 후 그녀는 머리를 빗으며 또박또박 자신은 'XX대학교 약대'를 가서 약사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대박. 당시 주위의 친구들은 자신들이 왜 아침 7시까지 학교에 가서 밤 11시까지 앉아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딱히 자문하지 않았다. 그저 날 때부터 해야 했던 공부를, 다들 대학에 가야 한다니 하고 있다가, 고3이 되면 이른바 '진로 상담'이라는 걸 통해 이 점수로 갈 수 있는 대학은 어디인가 정도를 탐색해 보는 것이 '내 미래'에 대한 자발적 고민의 전부였다. 나도 그랬다.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갔다가, 가방 속의 있는 것들로만 공부를 하고, 가방을 싸서 집에 왔다. 그런 내겐 처음으로 'OO과목에서 몇 점 받기'가 아닌, '인서울 대학 가기'가 아닌, 구체적인 '어른의 직업' 중 하나를 목표로 삼겠다는 또래의 존재는 아이돌 그룹 해체 수준의 충격이었다.


화가, 보육원 원장, 수의사, 요리사, 지휘자, 변호사, 신문기자. 살면서 '장래 희망'이라는 단어 뒤에 붙여 왔던, 혹은 남들이 붙여 주었던 것들을 급히 나열해보았다. 이럴 수가, 하나도 서로 관련이 없었다. 게다가 그중 몇 가지는 이미 문과 고등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범위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20년 가까이 살면서 내가 일관되게 추구했던 목표란, '시험 성적 잘 받는 것' 한 가지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알고 있는 세상의 그 어떤 직업을 떠올려 보아도 뭐 하나 내 것 같은 게 없었다. 그토록 열심히 외웠던 삼국시대 세기별 대표 임금님들이라든가 우리나라 지역별 강수 그래프들을 가지고는, 무엇이 내 길이 되어야 할지 전혀 추론해낼 수 없었다. 대학엘 가면, 그래도 뭔가 좀 알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대학을 거의 다 다닌 스물셋의 목표 역시 열일곱의 목표에서 크게 발전된 것이 없었다. 대학마다 유행처럼 장려했던 국제학생들과의 교류, 어학연수 등의 영향으로 '글로벌 냄새가 난다'는 공통분모가 하나 생겼다는 것 외엔. 국제기구. 외국계 기업. 항공사. 음.. NGO..? 허이구, 거창하기도 해라. 다분히 급조한 티가 나는 이번 장래 희망 리스트에는 '어디'는 있으되 '왜'도 '무엇'도 빠져있었다. 외국계 회사? 그냥 한국 회사만 아니면 다 좋다는 건가? 뭘 하는 국제기구에 가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데? NGO? 뭐의 약자인 줄은 아냐?


빨리 어디로든 가고만 싶었던 나는 갈 길 잃은 나를 혼내며 끙끙 앓았다.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하라는 대로 하고, 가라는 곳만 보며 뛰는 동안, 나는 정작 경쟁자 하나 없는 내 인생이라는 과목에서 열등생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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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의 최대 속력


우리 사회에선,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그 평생을 함께 뛸 스톱워치가 하나 켜진다. '우리 애가 돌도 안 됐는데 벌써 걸어요!' 째깍. 째깍. '우리 반에 벌써 6학년 수학을 푸는 신동이 있어요!' 째깍. 째깍. '옆집 애는 세 살인데 영어로 노래를 한대요!' 째깍. 째깍.


어린이들이 필수로 읽어야 한다는 위인전을 보면 모차르트는 세 살에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율곡 이이는 세 살 때 마당에 열린 석류 열매를 보고 시를 읊었다며 너희도 보고 배우라 한다. 도대체 그들의 세 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린이 위인전집과 TV 속 영재 발굴 프로그램과 거리의 영어 유치원 홍보물은 '벌써' 무엇 무엇을 해내고 '빨리' 남달라진 누군가를 찬양하기에 바쁘다. 그뿐인가. 대학은 '재수 없이' 한 방에, 취업은 '칼졸업' 후 바로, 결혼은 '적령기'에 남부럽지 않게, 승진은 최대한 '남들보다' 빨리. 더 이상 위인전을 읽지 않는 오늘도, 우리의 가슴을 반짝반짝 애태우는 속력의 훈장들은 많고도 많다.


주어진 트랙을 최대 시속으로 달리는 것이 너무 당연했던 나머지, 그 달리기의 목적에 대해 별 고민을 해보지 못하고 갑자기 어른이 된 건 나뿐만이 아닐 거다. 대다수의 우린 20대의 어느 날, 곧 직업이라는 것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음과 동시에 딱히 무얼 해야 할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해 본 적 없다는 사실과 직면했다. 세상은 우리가 자라는 동안 끊임없이 개념적인 장래 희망을 물어 왔지만, 그것이 나의 기질과 맞는지 어쩐지를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탐색해 볼 여유는 주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직장에 들어가고 나면, 사방을 분간하기도 전에 내 길이건 네 길이건 우선 달려야 먹고 사니 그렇게 이상한 나라의 시계 토끼처럼 우린 맨날 시간이 없다. 그런데 세상에 '나만의 길'이라니, 이게 무슨 한가한 소리람!

 

그러고 보면 우리에게 삶의 방향을 찾기 위한 시간이 지난한 이유는, 그 시간 자체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고민 중인 스스로의 상태를 끊임없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어쩌면 그 어려움과는 별개로 그것이 역시나 '빨리' 찾아지지 않아서는 아닐까. 언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지, 아니 답이라는 게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것을 고민하느라 내가 잠시 멈춰 있는 동안에도, 내가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는 계속 달리고 있을 테니까. 그 때가 어느 때든 '이제 와서' 내 길을 찾기엔 항상 늦은 것 같고, 현실적으로 일단 숨 쉴 수 있을 정도의 '안전거리'는 확보해 놓고 방향이든 뭐든 찾는 게 맞지 싶고. 아이러니하게도, 빨리 달리기만 하느라 생긴 이 고민을, 다시 빨리 끝내고 또 달려가야 할 것만 같다.


우리를 괴롭히는 진로 고민 자체는 진짜 스트레스가 아닐지 모른다. 오늘 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건, 방향을 고민하면서도 여전히 습관처럼 쳐다보고 있는 묵직한 스톱워치다.



/

이 산이 아니어도 된다


'이 산이 아닌가벼' 하는 생각이야 누구나 가끔씩 한다. 다만 그것에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이고 행동하기에 시간은 늘 모자라고 시작은 늘 막연할 뿐이다. 모처럼 작동한 고민의 GPS는 종종 더 중요해 보이고, 더 빨리 끝낼 수 있는 오늘의 일들에 밀려 금세 다시 꺼져버린다살면서 꾸준히 속력은 높였으되 스스로 방향을 찾아 본 경험이 적은 우리에겐, 확실하지 않은 내 감을 믿는 것보다는 속도 하난 확실한 모두의 길을 가는 것이 마음 편하다.


자기 안의 목소리를 '들어준다'는 건, 그래서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필요한 일이다. '처음에는 막연한 생각이었지만, 그것을 믿고 발전시켜 행동했을 때 결국 내게 더 좋은 결과가 나오더라'는 경험적 믿음.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낯설수록, 오히려 더 자주, 더 적극적으로 ‘이 산이 아닌개벼’를 해 보아야 하는 게 아닐까. 막연한 첫 생각과 자꾸만 마주 앉아 대화를 하고, 머리채 붙잡고 싸워도 보면서 고민의 근육을 늘려 놓는 거다. 언젠가 '저 산으로 한번 가 보면 어때?'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것을 스스로 납득하고 믿어 줄 있도록.


만일 내가 몇 년 전 그 막연한 마음의 소리를 무시했더라면, 자꾸만 가슴을 콕콕 찌르는 고민을 그저 피했더라면, 어땠을까? 여전히 직장인으로는 살고 있었겠지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회사원, 그래 봤자 회사원'이지만, 나는 지금의 이 길이 전보다 조금은 더 나의 길이라 느낀다.


이 산이 아닌 것은 몇 번이든 괜찮다. 이 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하루 바삐 이 산을 내려가 다시 저 산의 정상에 오르지 않으면 큰일 날 이유 또한 없다. 내 길을 찾는다는 것이 꼭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맨주먹으로 일궈낸 대단한 무언가’일 필요는 없잖은가. 현실의 그릇 안에서 타협한 비빔밥도 괜찮고, 중간중간 궤도를 수정해 가며 적절히 머무를 정거장을 찾아도 좋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내 길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익숙한 시계에서 눈을 떼고, 아직은 막연한 내 목소리를 들어 보자. 흔들거리는 나침반을 꼭 쥐고, 나의 길이란 걸 한번 가 보자.


시계는 영원히 방향을 모른다.



"앞으로 뭐가 될지 확실히 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그런 삶은 아닐 거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 만약 제가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그냥 여름 훈련에 참가하고 장교로 임관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뭐든 됐겠지만 아마 작가는 되지 못했을 겁니다."


- 김영하, 「말하」 중에서





| 신입 영업사원, 신입 카피라이터로 두 번 입사한 8년 차 직장인. 여전히 변비 같은 진로 고민 진행 중.


* 이 글의 축약본은 7월 19일 자 동아일보 '2030 세상'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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