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망, 혹은 그물망
‘소셜 미디어는 커뮤니케이션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이에 대해 최소 두 가지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사용하여 논하시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쉴 틈 없이 달려온 석 달간의 첫 학기를 마무리할 기말 과제다. 언제나 그렇듯, 해야 할 일을 코 앞에 두고 밤새 책상에 앉아 있자니 으레 딴생각이 뭉게뭉게 몰려왔다. 소셜 미디어라… 가만있자, 아까 밥 해 먹고 찍어 올린 사진에 누가 좋아요를 눌렀는지 볼까? 오, 어제 이렇게들 모여서 놀았나 보네, 좋겠다. 어라, 얘 프사가 심상치 않은데? 결혼하나?
나는 ‘단톡방’이 싫었다. 몇 년 전 소셜 미디어에 단체 채팅방이라는 개념이 등장했을 때부터 그것이 TV 틀어놓듯 당연해진 지금까지, 적게는 네댓 명부터 많게는 백여 명에 달하는 사람이 있는 그 방에서 특정한 주어 없이 오가는 대화들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 줄을 몰랐다. “나 이거 살 건데 괜찮은지 의견 좀!” “지금 저 좀 도와주실 수 있는 분ㅠㅠ” “야근 중인 사람 이따 맥주 한잔 콜?” 과 같은 질문들은 편리했다. 누군가를 집어 물어본 것이 아니기에 아무나 대답해도 되었고, 반대로 아무도 대답하지 않아도 되었다. 가끔, 아니 많은 경우 수많은 질문들은 허공에 부서졌다.
“지이수야 노올자~!” 어릴 적, 동네 친구들은 우리 집 앞에서 내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그것에는 다정한 리듬이 있었다. 학창 시절 주고받던 쪽지엔 네 이름으로 시작해 내 이름으로 끝나는 우리끼리의 이야기가 있었다.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거나, 소식이 궁금한 누군가가 있다면 바로 그 이를 불러 말을 걸어야 했다. 이 역시 지금은 달라졌다. ‘누구나’ 볼 수 있는 내 소셜 네트워크에 한 번만 내 소식을 올리면 된다. 만일 우리가 서로의 근황을 모른다면, 그것은 이젠 우리가 그동안 관계에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 아니라 누군가 SNS를 열심히 하지 않은 탓이 되었다.
결국 런던에 온 이후 그간 계속 피해 다니던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은 내가 여기서 무얼 먹고 사는지, 어디를 갔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굳이 내게 묻지 않고도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반대로 이곳에 있는 나도 오늘 내 친구가 어떤 커피를 마셨는지, 그 집 아이는 얼마나 컸는지 빠짐없이 모두 알 수 있었다. 편리했다. 그런데, 점점 누군지 모를 이들의 어떨지 모를 반응이 궁금해 실시간으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놨다 하는 나를 발견했다. 방금 찍은 사진을 최대한 있어 보이게 가공해서 올려놓고는 1분도 채 안 되어 누군가 좋아요를 눌러 주지 않았을까 궁금해 전화기를 집는다. ‘빨리 아무나 와서 나 잘 먹고 잘 산다고 해주세요!’
직접 다른 이의 문을 두드려 소식을 전하는 대신, 예쁘게 치우고 꾸며 놓은 우리 집 대문 안에 앉아 종일 누가 줄지 모를 관심을 기다리는 꼴이었다. 카톡으로 근황을 물으며 사진 한 장 보내달라는 언니에게 무심코 ‘인스타 보면 되는데’라고 말하려다 깜짝 놀랐다. SNS를 시작한 이후 무언가를, 누군가를 딱히 그리워하지 않는 나를 발견했다. 하루 종일 말 한마디 하지 않고도 종종 모임 한가운데 앉은 듯한 피로를 느낀다. 머리맡 핸드폰은 지금 너만 모르는 일들이 이렇게나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계속 빨간 경고등을 켠다. 이상하게도 그리움이 왁자지껄 밀려난 자리, 모두와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그 자리에 가끔 썰렁한 외로움이 분다.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개념이 학교에서, 사회에서 호들갑스럽게 다루어지는 사이, 우린 어릴 적 친구를 소리쳐 부르던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적인 의미를 잊었다. 최대한 널리 읽히는 광고 문구를 써야 하는 자로서, 커뮤니케이션을 책상에서 배운 학생으로서, 단톡방을 두려워하는 소심한 인간으로서, 고민이 깊어지는 밤이다. 소셜 네트워크는 더 넓은 세상과 나를 연결시켜주는 연결망일까, 손바닥만 한 세상에 나를 가두는 그물망일까.
글 | 작은바이킹
직장인을 일시 정지하고 날아온 1년짜리 유학생. 이따금의 토요일에 쓰는 빡세고 다정한 런던 이야기.
* 이 글은 12월 13일 자 동아일보 '2030 세상'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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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가 끝나면서 이것으로 아홉 달의 칼럼 연재도 끝났습니다. 쓰면서 많이 배우기도 했지만, 끝나서 시원하기도 합니다. 그간 신문과의 연재를 병행하느라 런던이라는 도시가 제게 주는 순간적인 느낌보다는 어떤 생각해볼 주제에 대해 조금은 딱딱한 글을 써왔는데요, 앞으로는 좀 더 가벼운 이야기,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이야기들 똥 되기 전에 뭉개지 말고 좍좍 써보고 싶어요. 좀 더 꾸덕꾸덕하게요. 눈치 보지 않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