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일기 쓰기, 오늘은 그냥 놀았다 참 재미있었다

재미있긴 뭐가 재미있어

by 이보라



일기 쓰기에 대해 생각하려고 하면 떠오르는 감정이 있다.


차분함? 편안함? 즐거움? 설렘?


응, 아니, 압박감.


학교 가기 전날 밤 일기를 써야 할 때의 그 압박감이 떠오른다. 나 오늘 뭐 했더라? 뭘 하긴 했는데.


방학 때 탱자탱자 실컷 놀다가 한 달 분량의 일기를 다 쓰려고 했을 때는 또 어떠했나. 그럴듯하게 현실 같은 소설을 써야 한다는 작가의 고뇌를 체험할 수 있었던 그 시절, 그리고 항상 문제가 되었던 날씨. 요즘처럼 네이버 날씨가 있었나, 뭐.


영어 일기 쓰기는 영어 공부 비법에 자주 등장하는 인기 있는 주인공 중 하나이다. 유행하는 방법은 항상 시도해 보는 내가 안 해봤을 리 없지, 그럼 그럼.


하지만 이 방법이 갖고 있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영어로 일기 쓰기가 아주 매우 정말 엄청나게 귀찮다는 것이다.


공책도 꺼내야 하고, 연필도 꺼내야 한다. 1시간 전에 뭘 먹었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기억해 내야 한다니 배도 또 고파진다.


매일의 활동의 기록을 남긴다는 건 상당한 부지런함을 요하는 일이고, 대체로 부지런함을 요하는 일은 나를 별로 안 좋아한다(나도 마찬가지거든). 부지런한 일을 꾸준히 지속할 수 있는 구조적 특징에 결함이 있으므로, 영어 일기 쓰기도 당연히 하다가 말았다(이 문장을 앞으로도 자주 보게 될 것이다).


물론 영어 일기 쓰기는 정말 좋은 훈련이다.


사전이나 AI를 옆에 두고 천천히 일기를 쓰는 것은 외국인 앞에서 영어로 버벅거리며 말하는 것보다 여유 있는 문장 연습이 된다. 영어 일기를 쓰고 그걸 소리 내서 읽는 연습을 하면 실제 영어 대화 중에 그 문장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


영어 일기 쓰기의 장점을 이렇게 알고 있으니 일기를 좀 써보면 좋으련만, 귀찮다.


적게 먹으면 살이 안 찐다는 걸 알지만 치킨을 먹고, 채소를 먹으면 건강해진다는 걸 알지만 치킨을 먹는다.


좋은 방법을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라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건 인간의 원초적인 본성이니 그냥 그러려니 하려고 한다.


그렇게 오늘도, 지극히 인간적인 삶을 살아간다.





[삽질 복기]

- 나는 인간이다, 고로 나는 인간적이다.

- 한글로도 안 쓰는데 무슨 영어 일기야.

- 일기를 쓰는 습관을 들여보고 싶기는 하다.

- 이참에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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