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랑 영어는 뭔 상관?
계기라는 건 참 웃긴 것이,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 머릿속을 휘저어 놓고 궁극적으로 인생도 바꾼다.
아주 어릴 때 집에 있던 과학 만화 전집이었다.
그 전집에는 공룡도 있고, 곤충도 있고, 비행기도 있고, 우주도 있고, 과학자도 있었는데, 희한하게 '영어의 즐거움'도 있었다.
과학 만화 전집에 왜 영어 관련 책이 있었는지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그 전집 안에 '수학의 즐거움'도 있었던 걸로 봐서는 과학 전집이니까 수학 관련 책을 넣었는데, 회사에 있던 문과생들이 형평성을 들먹이며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영어 관련 책도 함께 넣어준 게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수학의 즐거움'도 보고 '영어의 즐거움'도 보았다. 향후 인생 전반에 걸쳐 그랬듯이 '수학의 즐거움'에는 즐거움은커녕 괴로움밖에 없었는데, '영어의 즐거움'은 달랐다.
"엄마, 외국 사람들은 밥 안 먹고 빵 먹고 산대. 포크랑 숟가락도 막 세 개씩 놓고 먹고 아침에 일어나면 굿모닝 이렇게 인사도 한대."
일어나면 국물에 밥을 말아 계란말이와 함께 아침을 먹던 아이에게 정말 신기한 세계였다.
저렇게 나랑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저렇게 나와 다른 말을 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그렇게 땅콩만 한 시골 아이는 자기와 다른 삶을 사는 신기한 미지의 세계 사람들에게 홀렸다.
그 과학 전집 시리즈 전체를 이것저것 돌려보긴 했지만, 특히 저 '영어의 즐거움'은 책장이 닳도록 봤다.
본격적으로 영어 공부를 시작한 건 그보다 한참 뒤지만, 사실 나의 영어 (삽질) 인생의 시작은 그 책이었다.
지금도 영어는 나에게 있어 미지의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여는 열쇠다. 영어라는 열쇠로 많은 문을 들락거리고 다니면서 즐거움을 느꼈고, 지금도 즐겁다(영어의 즐거움 맞네 맞아).
계기라는 건 참 웃기지.
과학 만화라니.
[삽질 복기]
- 그때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면 좋았을 텐데!
- 엄마표 영어가 없던 시절이라 아쉽다.
- 그렇지만 그 시간에 책을 더 많이 봤지.
- 엄마 그래도 고마워, 그 전집 사 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