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이 아파, 마이 아파
전생에 헐크였던 것일까?
힘 조절이 잘 안되는 것인지 공책 위에 영단어가 지나간 자리에는 샤프로 찍어 누른 자국이 있었다. 오른손 가운뎃손가락 왼쪽 면에는 내 뇌처럼 단단하게 굳어버린 살덩어리가 생겼다. 오른손 날에는 코를 들이대면 연탄 냄새가 날 것 같은 반질반질한 진한 흑색의 얼룩이 남았다.
내 주변 모든 아이가 영단어를 다 쓰면서 외웠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도, 공부를 못하는 아이도, 모두가 영단어를 쓰면서 외웠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거니깐 소리 내서 안 읽는 거 아니야?
그건 아니었다.
공부를 하고 있어도 누군가는 항상 떠들고 있는 무질서의 세계였고, 선생님이 있다고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 정말 난장판이었네. 죄송합니다, 선생님). 상황이 이러했기 때문에 대다수는 귓구멍에 무엇인가를 꽂아 놓고, 강렬한 소리로 고막을 후려치며 외부 세계의 소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있었다.
원래 쓰면서 공부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런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군중 심리의 유혹에 휩싸여 나도 영단어를 쓰면서 외웠다.
아직도 그 장면이 기억난다.
구석이 까져서 손에 가시를 박으려고 위협하는 책상, 가끔 부러져서 파업을 시도하는 샤프심, 그리고 까맣게 너덜거리는 종이. 쓰느라 얼얼한 손가락. 게다가 팔도 아파, 마이 아파. 그 모든 것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있다.
아니, 근데 기억 속에 있어야 할 것이 없다.
영단어.
손을 혹사하며 써 내려갔던 영단어는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다. 그 모든 장면에서 주인공은 영단어인데 주인공이 없다. 기화펜으로 쓴 것처럼 영단어만 날아갔다.
지금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고 영어로 대화를 할 때 쓰는 단어들은 그때 너덜거리는 공책에 꾹꾹 눌러썼던 단어들이 아니다. 지금 쓰는 단어들은 회화 책을 지겹도록 듣고 따라 말하기를 하면서 쌓인 단어들이고, 미국 드라마를 보면서 젊은 날의 인생을 한심하게 허비하는 동안 쌓인 단어들이다.
무엇을 위해 그토록 열심히 썼던가.
입은 뻥긋도 하지 않으면서 영어를 어떻게 늘리겠다고 그랬던가.
공책은 너덜거리고 내 마음도 너덜거리던 시절이었다.
너덜너덜.
[삽질 복기]
- 쓰는 게 목적이 아닌 이상 쓰면서 공부하지 말아야지.
- 눈으로 더 많이 보고, 입으로 더 많이 말해야지.
- 귀로 더 듣고, 입으로 더 많이 말해야지.
- 선생님이 계실 땐 좀 조용히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