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말이야
그렇다.
텝스 공부도 해봤다.
왜 그랬을까? 도대체 왜 그랬을까?
전생에 코끼리였는지, 귀가 아주 넓고 얇고 팔랑거려서 또 어디선가 주워들었겠지. 텝스 공부하면 영어 실력이 많이 늘 것이라는 말 같은 거 말이야.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에서 개발한 시험이라는 말에 조금 혹했겠지. 그랬겠지, 하. 그랬을 거야.
의욕이 넘쳤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텝스는 또 왜 기웃거린담(사실 공부하라는 사람은 없었고 성적보다 바른 인간이 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좀 희한한 엄마가 있었는데 어쨌든).
텝스 공부를 하는 게 도움이 될 정도의 영어 수준인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어휘 및 독해 수준은 학교 영어 시험 성적을 받을 만큼 정도이고(벼락치기), 나머진 대체로 엉망이었다.
텝스는커녕 수능 영어 어휘와 독해 지문 속에서도 이미 충분한 고난을 겪고 있었는데,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지혜를 얻기 위한 고행이 더 필요했던 건지 텝스 책을 사서 공부를 했다.
그리고 이 시리즈에서 반복되는 후렴구와 같이, 이 시도는 다행히 오래가지 않았다.
몇 장 넘겨 보면서 문제를 풀어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이 갖고 있는 잠재적 위협의 크기를 파악하는 데 충분했다.
충만한 결단력으로 텝스 책은 바로 접고, 만화책을 펼쳤다(아니, 공부를 하라고 공부를).
지금 돌이켜 보니 텝스 공부를 하면 영어 실력이 많이 늘 것이라는 말은 사실인 것 같다. 정확히 말하자면, '텝스를 끝까지 제대로 공부하면' 영어 실력이 많이 늘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영어 회화도 제대로 못 했다.
학교 영어 시험 지문은 풀 수 있었지만, 정작 자기소개를 하거나 일상생활에서 있었던 일을 영어로 이야기하는 등 기초적인 실전 활용 능력이 오히려 부족했다.
나에게 필요한 건 텝스 시험공부가 아니었다.
중학교 때 배운 수준의 영어 문장을 편하게 말할 수 있도록 연습을 하는 것이 더 필요했다.
그걸 몰랐다.
항상 그랬다.
[삽질 복기]
- 텝스 책은 쳐다보지도 않을 테야.
- 그 시간에 기초 문장 말하기 연습을 더 해야지.
- 그 시간에 영어 단어 공부나 더 해야지.
- 텝스 책 안 산 돈으로 만화책 빌려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