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회화 표현 책을 듣고 따라 했던 겨울 방학

맙소사 입이 트이다니?

by 이보라




외국인은커녕 외지인조차 없던 시골 마을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던 어느 날, 긴급 제보가 들어왔다.


작년에 서울대에 합격해 온 동네를 축하 현수막으로 휩쓸었던 언니가 동네에서 외국인과 대화를 하고 있는 장면을 친구가 목격했단다.


그 제보를 듣고 첫 번째로 든 생각은 '이 깡촌에 외국인이 있어? 그 사람은 여기서 뭐 하는 건데?'였고, 두 번째로 든 생각은 '그 언니 외국 나갔다가 온 적도 없는데 영어 회화가 돼?'였다.


친구 말로는 그 언니가 영어 회화책을 사서 공부한 이후로 회화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애?" 귀가 솔깃했다.


영어를 항상 좋아했고 영어를 잘하고 싶어 했지만, 외국인 선생님도 없는데 영어가 정말로 될지에 대해 항상 무의식적으로 의문을 품고 있었던 나였다. 근데 희망이 생긴 거야! 그 언니가 됐으면 나도 되지 않을까? (대체 무슨 근거로).


그날로 영어 회화책을 주문했고, 곧 책이 도착했다.


두둥.


책이 두껍네...


방대한 문장이 들어 있어 일단 무게로 누르고 보는 표현사전이었고 같이 따라온 테이프의 양도 어마어마했다. 1A, 2B가 적혀 있는 테이프, 참말 추억 돋는다.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만화책 보기, 늘어지기, 동면 등 상당히 공사다망한 마지막 방학을 보내려고 했으나, 바쁜 수면 일정을 쪼개어 영어 회화를 도전해 보기로 했다.


책상에 앉아 책을 펼쳐 놓고 테이프에서 나오는 음성을 열심히 따라 해 본다


발음은 꼬이고 속도는 따라갈 수가 없지만 질질 끌려가는 대로 어떻게든 끌려갔다. 자고 있을 줄 알았는데 외계어로 혼자 떠들고 있는 딸내미가 생소했는지, 엄마가 힐끔힐끔 나의 뒷모습을 보고 가곤 했다.


언제나 그랬듯 며칠 하다 말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하루에 약 1-2시간씩 두 달 가까이 쏼라쏼라의 잔치를 벌였고, 그렇게 방학 동안 회화 책을 듣고 따라 하는 데 약 90시간을 쓴 것은 나의 영어 인생에 있어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대학교 입학 후 교양 영어 원어민 선생님과 대화를 나눌 때의 그 희열이란. 나중에 교환 학생을 가고 영어를 쓰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때 쌓아 놓은 실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역시 정보는 힘이다.

정말 큰 힘이다.





[삽질 복기]

- 이왕 하는 거 대학교 때도 계속해서 영어 실력을 더 확 올렸더라면 좋았겠다.

- 그렇지만 저거라도 한 게 어디람.

- 제때 중요한 제보를 해주었던 그 친구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 네가 누군지는 기억 안 난다. 미안하다.


월, 화, 수, 목, 금, 토 연재
이전 27화아리랑 TV <컨텐더스>로 수능 말아먹기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