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값 좀 했나?
어릴 때는 미술 학원에 다니고, 피아노 학원에 다니고, 컴퓨터 학원도 다녔다(워드프로세서 자격증을 따던 시절이 있었지, 그랬었지).
하지만 공부 때문에 학원을 다닌 적은 거의 없다.
수학 성적이 너무 안 나올 때 수학 학원을 한 달 다녀본 적이 있고, 영어 회화 학원을 등록했다가 하루 수업을 듣고 나머지 수업 수강 취소는 해 본 적이 있었지만 그게 다였다.
그렇지만 이번엔 내 발로, 결연한 의지로, 학원에 등록했다.
교환 학생 지원을 위한 토플. 리스닝이랑 리딩은 혼자 하겠는데, 라이팅... 하 자신 없는 거야, 이거. 그래, 학원이 답이다.
그렇게 등록을 했다.
토플 라이팅 학원. 강남에 유명한 그 학원.
딱 한 달.
필요한 점수를 못 받으면 또 다녀야 하고, 그러면 또 내 돈이 나가지. 그럴 수 없지. 어떻게든 한 달 동안 열심히 해야지!
그렇게 지하철 2호선에서 콩나물이 되었다.
언젠가 신문에서 봤던 것처럼 등을 밀어서 넣어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빈틈없이 채워져 있는 지하철 안에서 신나게 찌그러졌다.
한 달을 그렇게 찌그러져서 다니니 얼굴도 좀 찌그러진 것 같다.
하지만 족집게 강좌는 족집게 강좌다.
아주 귀에 쏙쏙 들어온다.
'so'를 쓰면 안 되고 'therefore'를 써야 한단다.
'for this reason', 'as a conclusion', 'thus', 'for example' 같은 것들로 틀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내용을 넣으란다.
정말 중요한 것만 콕 집어서 시키는 대로만 하란다.
원래 누가 시킨다고 그걸 그대로 하는 능력 같은 건 초등학교 운동장에 흘려 잃어버린 지 오래지만, 이번에는 시키는 대로 했다.
토플 성적표를 받아 보니... 안정권 점수다! 이제 면접에 가서 사기만 잘 치고 오면 되겠어!
그렇게 교환 학생을 갔다.
그때 배워 놓은 작문 기술은 교환 학생 학교에서 과제를 써서 낼 때도 여러모로 유용했다. 아, 대학에서 토플 시험을 이래서 요구하는구나, 음. 무작정 우리 돈 버리라고 시키는 건 아니구나, 음.
토플 라이팅 학원 한 달 수업으로 두 가지를 배웠다.
성능 좋은 족집게는 필요한 점수를 쏙쏙 뽑아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과외로 번 피 같은(아니, 피보다 더 소중한) 돈을 아끼고자 하는 열망은 원자력만큼이나 강력한 에너지가 된다는 것.
참고로, 이름을 알려주지 않을 그 학원은 내돈내산입니다(당연).
[삽질 복기]
- 2호선 안에서 찌그러진 보람이 있었다.
- 피 같은(피보다 더 소중한) 돈을 쓴 보람이 있었다.
- 그때는 토플이 참 싫었었는데...
- 지금 생각해도 정말 싫긴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