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모여
지성의 상징이었다.
유식함의 상징이었고, 진지함의 상징이었다.
전공 서적 위에 살포시 올려 함께 들고 다니면 무언가 있어 보이는 향기가 폴폴 나는 그런 잡지였다.
휴. 그렇게 나와 어울리지 않는 걸 갖고 대체 뭘 한 거지?
대학교 절친은 나처럼 영어 공부를 좋아했다. 아, 영어 공부를 좋아한다. 현재진행형이고, 지금 상태를 봐서는 미래형이기도 하다. 사람은 끼리끼리 모인다더니.
아무튼 친구는 항상 영어 교재를 들고 다니면서 수시로 공부를 했다. 학교 식당에서 배를 채우는 동안 최신 영어 공부 방법 트렌드에 대해서 심도 있는 논의를 하고, 학교가 끝나면 어디에 가서 시간을 낭비하고 놀지 머리를 함께 싸맬 수 있는 친구였다.
하지만 친한 친구들은 이게 문제다.
우정은 상호 유사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친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한다.
그 신뢰를 재료 삼아 꼬드기기 시작하면 넘어갈 수밖에 없다. 평소에 티끌만큼 있던 이성적 판단력도 이렇게 친구와의 신뢰 앞에서 다리에 힘이 쭉 풀린다.
정신을 차려보니 중앙도서관 1층 라운지였다.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중앙도서관 1층이라고, 이 여자야).
영문 이코노미스트 강독을 하기 위해 다양한 과의 사람들이 모였다. 영문 기사를 읽고, 뜻을 해석하고, 영어로 토론을 했다.
사실 그 스터디에서 정확히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기억은 흐릿하다.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형성된 기억은 원래 뼈대가 견고하지 못하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있던 기억도 없어졌다.
그리고 아마, 기억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사람은 원래 끔찍한 기억은 다시 떠올리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
그때는 이코노미스트를 읽을 수 있는 수준의 어휘력이 되지 않았다(지금은... 묻지 마). 고등학교 때 배운 영어 단어도 수능 시험을 기점으로 이미 상당 부분 휘발된 상태였다.
고급스러운 어휘가 휘황찬란하게 날리는 정교한 문법의 미로 안에서 그렇게 헤매고 또 헤맸다.
지금 읽는 이코노미스트는 글이 참 유려하다. 고급스럽게 차려진 식탁에 올려진 음식들이 맛깔나다.
그렇지만 여전히 즐겨 읽지 않는다. 그냥 별로 안 읽힌다. 차라리 포브스 쪽이 내 취향에 더 맞는 것 같다. 지금도 손이 안 가는 잡지를, 영어가 지금보다도 더 정교하게 엉망이었을 때 읽었으니 도움이 되었을 리가 없다.
인류의 평화를 위해, 스터디는 각자의 수준 및 취향에 맞는 걸로 하는 것이 좋겠다.
[삽질 복기]
- 어학의 핵심은 자기 이해다.
- 스터디 갈 시간에 영어 소설책 읽을걸.
- 스터디 갈 시간에 연애를 할걸.
- 친구 따라 중도 가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