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기를 두들겨 두들겨
질문: 하루 15시간씩 30일이면 몇 시간?
정답: 450시간.
불살랐던 시간이었다.
교환 학생을 지원하려면 토플 성적은 필수였다. 전공 수업 영어 강의도 듣고, 교양 영어 원어민 선생님과 대화도 할 수 있지만, 토플 성적을 받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영어 시험이 진저리 치게 싫지만 바로 그 이유로, 어떻게든 방학 중 한 달 안에 끝장을 보기로 했다.
토플 점수 안정권만 넘으면 돼. 몇 달 동안 고통스러운 것보단 한 달 동안 고통스러운 게 낫잖아. 학기 중에는 수업과 과제와 시험 때문에 시간 쪼개기가 어려우니 방학 동안 아주 죽어라고 한 달만 딱해서 그걸로 한 번에 딱 끝내는 거야. 학원비도 아끼고 시험 응시료도 아끼고 나의 수명도 아끼고.
결심을 한 후 실행에 옮겼다(게을러터진 인간인데 의외로 실행은 빠르다).
학교 게시판에 토플 스터디 모집 글을 올리니 사람들이 몰렸다.
스터디 그룹을 만든 다음, 주기적으로 학교 그룹 스터디룸에 모여 단어 시험을 같이 풀고 진도를 서로 확인하며 서로에게 고난의 시간을 선사했다. 쓰기는 도저히 혼자 못 할 것 같아서 한 달 동안 옆구리 터지기 직전의 김밥 같은 2호선 지하철을 타고 강남의 유명 어학원에서 족집게 강좌를 들었다.
토플 듣기 음성을 닳도록 들고, 문제를 닳도록 풀고, 단어장이 닳도록 외웠다 (솔직히 진짜로 물리적으로 닳지는 않았다, 닳도록 하는 사람들은 대체 뭘까?)
씻고 자고 먹는 시간 빼고 모든 시간을 토플에 썼다.
한 달 동안 토플만 생각하고, 토플만 공부하고, 토플로만 꿈꾸고, 토플의 대기권 안에서 숨 쉬었다. 읽고 싶은 책도, 만나서 수다 떨고 싶은 친구도, 눈물을 머금고 옆으로 잠시 밀어 두었다.
‘토플 성적만 받으면 하고 싶은 거 다 할 거야.’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
어떤 날은 잠을 자느라 13시간, 어떤 날은 좀 더 일찍 일어나서 18시간씩 했다. 하루 종일 폭포수 쏟아지듯 영어를 머릿속에 부어 넣으니 기억 효과가 아주 빨랐다. 꿈에서도 영어 단어와 문장이 나오고,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 들었던 듣기 파일 음성이 들렸다.
6명에서 시작된 스터디는 날짜가 지날수록 사람들이 하나씩 빠져나가면서 결국 둘만 남았다.
한 달 후 나는 원하는 점수를 받아 교환학생에 합격했고 함께 남아있던 언니는 미국 석사에 합격했다.
15년이 지난 지금, 그 언니와 함께 그 시절을 회상하면 그저 웃는다.
“언니, 그때 우리 진짜 미친 것 같지 않았어?”
[삽질 복기]
- 미쳐서 하면 결과는 나온다.
- 시험 영어는 특히 더 그렇다.
- 그때 외운 토플 어휘는 다 날아갔다.
- 그래도 영어 실력이 쌓이긴 쌓였지.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