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영어 공부, 안 한 사람도 있나요?

진짜 없지 않을까?

by 이보라



<아빠 뭐 하세요?>라는 드라마를 알고 있다면 이 시점에서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즐거웠던 일들은 다시 한번 곱씹으며 단물을 빼 먹고, 힘들었던 일들은 다시 한번 외면하며 현실 부정을 하고, 지금까지 나의 삶에 좋은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에게 마음으로나마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한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


그 시절의 미국 드라마는 더빙이었다.

미국 드라마이지만 한국어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지금 아는 그 미국 드라마가 아니었다.


그러다가 20대에 접어들 때쯤 진짜 미국 드라마가 한국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살아 있는 영어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채널이라고는 AFKN과 아리랑 TV뿐이었는데 영어 잔치가 열렸다. 그레이 아나토미, 웨스트윙, 길모어 걸스, ER, CSI, 그리고 프렌즈 등. 열거하고자 하면 한도 끝도 없다.


한국 드라마와는 다른 연출과 독특한 전개, 그리고 세련된 음악이 있었다. 영어 때문이 아니더라도 빠질 수밖에 없었다. 영어 공부를 핑계로 빠지기에 아주 딱 좋았다.


심연의 어둠이 눈 아래에 펼쳐져 턱까지 내려오도록 미국 드라마를 보고 또 봤다. 영어가 늘 수밖에 없었다. 주인공들이 절규를 하면 할수록 그 대사는 귀에 더 콕콕 박혔다. 입으로 따라 말하지는 않았지만 귀에 콕콕 박혀 있던 건 나중에 학교나 회사에서 영어를 써야 했을 때 뽑아 쓸 수 있었다.


지난 15년간 영어 공부 핑계로 미드 본 시간을 진지하게 계산해 보니 좀 슬프다.


빅뱅이론 약 204시간, 웨스트윙 약 185시간, 그레이 아나토미 약 174시간, 프렌즈 약 174시간, 더 프랙티스 약 106시간... 이 5개 작품으로만 약 843시간을 쓰고 그 외 다른 걸 합쳐서 1,428시간 정도를 썼다. 총 2,261시간 정도 되네.


내가 본 시즌으로만, 반복 횟수까지 고려했는데(예: 그레이 아나토미 4시즌까지 3번 반복), 정말 충격적인 숫자다.


저 시간의 50%만 말하기 연습에 썼어도 영어 말하기 실력이 훨씬 좋아졌겠지. 그냥 눈으로 보기만 하지 않고 들리는 문장을 따라 말하기 연습만 했어도...


눈물을 닦고 보니, 그 사이 <아빠 뭐 하세요?>는 원어로 돌아왔다.

디즈니 플러스에서 <Home Improvement>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삽질 복기]

- 미국 드라마 적당히 보고 그 시간에 영어 문장 소리 내서 읽기 할걸.

- 미국 드라마 적당히 보고 그 시간에 책 더 볼걸.

- 미국 드라마 적당히 보고 그 시간에 공부를 더 할걸.

- 미국 드라마 적당히 보고...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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