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겨웠지만 그랬지만
교환 학생을 2학기 과정으로 다녀왔다.
1학기만 다녀올 수도 있었지만, 이왕 비행기 타고 나간 거 2학기를 꽉 채워서 다녀오고 싶었다. 대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태어나서 처음으로 물 건너 나간 것인데 그렇게 1학기로 끝낼 수는 없지, 암.
그리고 학기 사이 여름 방학 때 인턴 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유럽에서 온 교환 학생 친구들은 교환 학생까지 와서 무슨 일을 하냐고 했지만,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넣을 게 있는데 안 할 이유가 없지.
게다가 여름 방학 동안 일을 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학교 수영장 침대 의자에 누워서 책을 좀 뒤적거리다 낮잠을 자거나, 교환 학생 친구들이랑 인도네시아의 예쁜 백사장 해변으로 놀러 가 맥주를 마시며 젊음을 낭비하거나, 금요일 밤 단체로 술 마시러 시내에 나갔다가 다음 날 새벽 기숙사 계단에 앉아 맥 모닝을 먹는 일뿐이었는데... 왜 그 좋은 것들은 안 하고 일을 했니? 왜 그랬니?
한국에서 대학 생활을 할 때도 인턴을 해 본 적은 있지만 해외 인턴이라니 설렜다. 강한 싱글리시를 쓰는 상사들의 말을 알아듣기는 힘들었지만(네? '셰줄'이 뭐라고요? 아 '스케줄'이요?), 인턴 친구들도 몇 명 있어서 심심하지 않고 재미있었다.
인턴을 하면서 보고서 자료 조사도 하고 비즈니스 미팅 통역도 했지만, 매일 꼭 해야 했던 일은 바로 신문 기사 번역이었다.
한국 산업 관련 기사와 영문 산업 기사를 매일 읽고, 내용을 요약하고 번역해야 했다. 신문 기사에서 사용되는 단어들은 내가 일상에서 쓰는 (엉망진창) 단어들과 달리 수준이 높았기 때문에 온라인 사전을 옆에 끼고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신문 기사 요약 일은 참 재미가 없다는 것을(졸업 후에도 주야장천 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번역 일은 참 재미가 없다는 것을(졸업 후에도 주야장천 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상사의 닦달에 쫓겨 기사 요약과 번역 일을 빠른 속도로 하면 한국어 및 영어 읽기 능력이 좋아지고, 영어 쓰기 능력 또한 좋아진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때 나는 일을 한 게 아니라, 돈 안 내고 문해력 향상 및 영작문 수업을 들은 거였음을.
[삽질 복기]
- 버리는 경험은 없다.
- 그때 그 내용들을 소리 내서 읽었더라면!
- 한 번씩이라도 소리 내서 읽었더라면!
- 크. 그랬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