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서 얻은 것
대학교 때 교양 수업으로 비즈니스 영작문 수업을 들었다. 전공 영어 강의는 많았지만 모두 한국인 교수님이 한국인스러운 영어로 하시는 수업이었는데, 비즈니스 영작문 수업은 원어민 강사가 하는 수업이라 선택한 수업이었다.
교환 학생으로 싱가포르에 가서도 비즈니스 영작문 수업을 들었다. 작문 과제를 낼 때마다 미국식 단어를 영국식 철자로 교정해야 했던 게 조금 번거로웠지만 유익한 수업이었다.
그러고서는 일을 했다. 싱가포르에서 인턴도 하고, 한국에서도 외국계 회사에서 인턴을 하고, 취업을 해서도 해외 본사 및 고객사를 상대하면서 일을 했다. 그러면서 이메일의 세계로 진입했다.
이메일은 단순히 소통의 도구가 아니다.
이메일에는 돈의 돌고 도는 세계가 들어 있고,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한 정복 전쟁이 들어 있고, 부서 간 알력 싸움이 들어 있고, 부서 내 업무 책임 전가의 혈전이 들어 있고, 은근한 자기 자랑과 눈꼴신 아부가 들어있다. 무협지보다 더 피 튀기고 막장 드라마보다 더 짜릿하다.
그리고 나에겐 학교였다.
고급 비즈니스 영작문 학교.
자료를 보내고 일정을 잡는 정도의 간단한 이메일은 맛뵈기 수준이었다. 진짜 수업은 글이라는 도구로 지식을 전달하고, 아이디어를 팔고, 권력 투쟁을 하는 장문의 이메일들에 있었다. '이건 뭔데 이렇게 길어?'하는 메일에 진정한 고급 비즈니스 영작문 수업의 정수가 들어있었다.
학교에서 비즈니스 영작문 수업을 들었던 것과는 다른 차원이었다. 영어만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 미묘한 뉘앙스도 가르쳐 줬다. 원어민이 쓴 메일과, 원어민이 아닌 외국인이 쓴 메일과, 원어민이지만 한국 사고방식이 묻어나는 교포가 쓴 메일은 각각 다른 색깔이었다.
메일함을 뒤적거리면서 '그럴듯하게 있어 보이는' 문장을 주울 수 있었다. 이삭을 줍는 아낙처럼 허리가 아프도록 주웠고, 그렇게 주운 문장들은 다음에 이메일을 쓸 때 써먹었다.
베껴 쓰는 것도 능력이었고, 그렇게 나의 이메일도 진화했다.
아침에 출근하면 잔뜩 쌓여 있던 이메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값진 수업이었다.
교수님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강의 평가는 최고점을 주고자 한다.
[삽질 복기]
- 줍지만 말고 문장들을 따로 모아 볼걸.
- 그럼 책으로 엮어서 낼 수 있었을 텐데.
- 좋은 문장들 입으로 말하기 연습도 할걸.
- 발표 연습까지 됐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