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 아무나 합니까?
분명 엄마의 개입이 있었다. 물증은 없지만 심증이 확실하다.
어릴 때 장래 희망은 항상 화가나 만화가였다.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생활기록부의 장래 희망은 항상 그랬다.
그러다가 고등학생 때 생활기록부를 보는데 뜬금없이 '동시통역사'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허구한 날 책 보고, 그림 그리며 놀던 딸내미가 영어에 빠지고 학교 영어 성적도 곧잘 받아오니 엄마가 나의 어두운 미래에서 티끌 같은 희망을 발견했던 것 같다. 중학교 떄부터 은근슬쩍 얘기를 하더니 그게 어느 날부터인가 '나의' 희망직업에도 등장한 것이다.
그림 인생은 물 건너 갔고 영어는 재미있어 보이긴 했으니까. 매일 밤 내가 자는 동안 엄마가 나의 귓가에 최면을 걸듯 속삭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점도 있다. 물증은 없는데 심증이 있다.
대학교에 가서는 집 떠나 노느라 바빠서 잊고 있던 장래 희망이었다. 영어는 좋아했지만 영어를 전문으로 쓰는 직업에 그렇게 진심이었던 적은 없다.
교환 학생으로 해외에 나가서 인턴을 하고, 외국계에서 일하다 보니 통역을 해야 하는 상황에 종종 놓이는 경우가 있었고, 그러면서 통역사의 세계를 잠시 엿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한국 회사와 외국 회사의 비즈니스 협의 미팅 통역을 하면서, 엄마한테 텔레파시를 보냈다.
'엄마?'
'통역하려면 영어 정말 잘해야 해.'
'그리고 한국어도 잘해야 하고.'
'난 글렀어.'
일에는 무리가 없도록 통역을 했지만, 역시 통역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통역을 하려면 두 개 언어 사이에서 빠른 전환이 이루어져야 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는 것과 그 말을 바로 다른 언어로 통역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통역을 하려면 영어도 잘해야 하고 한국어도 잘해야 했다(둘 다 '잘하지' 못하고 그냥 필요한 만큼만 했다). 언어만 잘하는 게 아니라 '말'을 잘 해야 했다(슬프다).
일반 회사에서의 비즈니스 통역도 이렇게 힘든데, 더 속도감 있고 전문적으로 진행되는 동시통역사라니 턱도 없다.
게다가 통역은 본질적으로 남의 말을 전달하는 사람이다.
겪어 보니 나란 사람은 그냥 내 주장을 하고, 내 생각을 떠드는 걸 좋아했다. 통역 일을 할 때도 내가 판단하기에 적절한 말을 더 갖다 붙였기 때문에, 통역사의 역할보다는 대리인에 더 가까운 역할을 했다.
영어를 못하는 팀장님이 "보라씨 얘기만 하지 말고 내 얘기도 좀 전달해 줄래?"라고 말할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말 많은 나의 오지랖을 환영했다(적극적이라며).
그렇게나마 통역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아서(그 길에서 선택받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삽질 복기]
- 그래도 영어는 많이 늘었다.
- 말도 많이 늘었다.
- 자기주장도 늘었다.
- 경험은 항상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