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명상 오디오 들으며 마음 챙김 수련을 해보았다

그리고 의외의 수확

by 이보라



계기가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명상에 빠졌다.


혼자 호흡을 고르고 앉아 있노라면, 들숨과 날숨의 움직임을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내일 아침에 먹을 바나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바나나에 저항하지 않고 잠시 허공에 떠 있도록 두었다가 흘려보내고,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천천히 들이쉬고, 더욱 천천히 조금씩 내쉰다. 그러다 보면 또 치킨이 생각난다. 그냥 생각만 나는 게 아니라 냄새도 어디에선가 나는 것 같다.


안되겠다. 바나나는 어떻게 흘려보내겠는데 치킨은 그게 잘 안되네. 들으면서 따라갈 수 있는 가이드 명상 오디오를 찾아보기로 한다. 명상 오디오를 영어로 들으면 영어 공부도 되지 않을까? 상당히 그럴듯한 계획 같아 보였다.


하지만 유튜브가 있기 전 시절이다(있었는데 내가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다).


사운드클라우드도 없고, 오더블도 없던 시절이다(역시나 정보력이 떨어지는 나의 불찰일 수 있다).


영어 명상 오디오를 도대체 어디에서 구한담?


인터넷을 찾아보니 영어 명상 오디오를 구매 후 다운로드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페이팔로 결제하고 파일을 직접 다운로드하는 옛날 방식으로 영어 명상 오디오를 구한 다음, 그날 밤부터 누워서 명상을 시작했다.


예쁜 목소리의 여자가 "Our lives are so full..."로 운을 떼며 시작되는 가이드 명상이었다.


누워서 해도 된다고 하는 게 일단 마음에 들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눈에 힘을 줬다가 빼고, 턱에 힘을 줬다가 빼고, 발가락에 힘을 줬다가 빼면서 명상에 빠져든다. 온몸의 감각을 느낀다. 나의 몸에서 이런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구나.


몸 전체를 훑으면서 감각하는 명상이라 다양한 신체 부위 용어를 영어로 배울 수 있었다(물론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단어들이 많았다).


그렇게 매일 밤 명상에 빠져들고...


잠에도 빠져든다.


명상 오디오는 1시간짜리였는데 20분 이상 들어본 기억이 없다. 명상 가이드 오디오를 듣고 있다가 눈을 떠 보면 항상 아침이었다. 그 이후에는 무슨 내용이 있는 걸까? 언젠가 듣게 되긴 할까?


그렇게 잠을 푹 잤다.


그 명상 오디오를 틀어 놓고 잔 날은 꿈도 안 꿨다.


영어가 늘었던 건 모르겠지만 면역력은 확실히 늘었을 것이다.


그럼 됐다고 치자.





[삽질 복기]

- 숙면도 하고 영어도 (찔끔) 늘고 좋다 좋아.

- 언젠간 끝까지 명상을 하며 들어 봐야지.

- 언젠가는.

- 진짜 언젠가는.


월, 화, 수, 목, 금,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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