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영어의 습격
언어의 꽃은 문학에서 핀다.
작가가 고심해 하나하나 고른 단어들이 둥글게 모여서 손을 맞잡고 춤을 춘다.
셰익스피어는 궁극의 문학 작품이라고 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한국어 번역판으로도 다 읽지 못해 정확하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똑똑해 보이는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니 약간 그런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가 BBC 셰익스피어 오디오 드라마를 만났다.
셰익스피어를 추앙하는 국가의 방송국답게, 오디오 드라마로 제작된 다양한 작품들이 있었다. 한 명의 성우가 아니라 여러 명의 성우가 작품 속 인물들을 각각 맡아 드라마처럼 연기를 했다. 배경음악도 있었고 특수 음향도 있었다.
맥베스, 오셀로, 햄릿 같은 작품을 하나씩 들어보았다.
오호, 흥미롭다.
정말 흥미로운데...
듣기가 정말 힘들었다.
미국식 영어가 훨씬 귀에 익숙한 나에게 영국식 영어는 음성 식별 자체가 어려웠다. 싱가포르에서 영국식 색채가 느껴지는 싱글리시에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된 귀였지만, 본토 영국 발음은 또 달랐다(BBC 오디오 드라마 성우의 발음은 영국 출신 교환 학생 친구의 발음과도 또 달랐다).
게다가 배역에 따라 목소리가 또렷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고(할머니 마녀 역할 등), 배우마다 목소리와 억양이 다르다는 점도 혼란을 더했다. 그뿐만 아니라, 언제나 그랬듯 나의 어휘력은 고전 소설 작품을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에 맥락이 툭툭 끊겼고, 셰익스피어 작품에 지뢰처럼 퍼져 있는 고어 단어가 난관을 더했다.
한국어 번역판 도서로 읽은 적이 있는 작품은 그나마 약간 더 이해할 만했지만, 대부분은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 같을 뿐이었다.
그랬다.
그렇게 처참하게 패배하고 무너졌다.
마음의 준비 없이 쉽게 도전할 것이 아니었다.
[삽질 복기]
- 무작정 듣는 게 아니라 한국어 번역판부터 다시 읽고 들어야 했다.
- 여러 배우가 참여한 오디오 드라마가 아니라 성우 한 명이 읽어주는 오디오북을 찾아 듣는 것이 나을 뻔했다(나중에 시도한 결과 역시나 이 경우가 더 나았다).
- 어휘력을 좀 더 키운 후에 들어야 했다(아니면 번역판을 보면서 듣거나).
- 원서를 펴놓고 같이 보면서 들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