쏼라쏼라 외칩니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학교 운동장, 평소에 까르르 잘 웃는 아이였는데 학교 웅변대회 연단에만 올려놓으면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운동장을 뒤집어 놓던 초등학교 친구가 생각난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이 하는 것 중 하나가 영어 연설문 소리 내서 읽기였다.
한 번만 읽는 게 아니라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연설문을 통째로 외우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집 도로명 주소도 가끔 잊어버리는 사람으로서 연설문을 외우는 건 기대조차 하지 않았지만, 영어 연설문으로 말하기 연습을 하는 건 한 번 시도해 보고 싶어졌다.
인터넷에 연설문은 넘쳐났다. 스티브 잡스, 버락 오바마, 오프라 윈프리, 빌 게이츠 등... 인터넷에서 영상을 구하기도 쉬우니, 영상을 먼저 보고 나서 연설문을 소리 내서 읽을 수도 있었다.
영상을 보면 그런 유명한 사람들도 생각보다 연설문을 매끄럽게 잘 읽지 못했다. 가끔 멈칫하고, 가끔 어색하게 버벅거렸다. 그 모습을 보니 상당히 할만해 보였다. 저 정도는 나도 하겠는데?
물론 사람은 착각의 동물이고, 나는 사람이다.
기대는 첫 문장부터 깨졌다. 단어 하나하나를 소리 내서 읽는데, 그 길이 생각보다 훨씬 울퉁불퉁하다.
발음은 꼬이고, 문장을 끊어서 읽는 지점을 놓친다. 연설문의 문장 구조가 엄청 복잡한 것도 아닌데 멈칫하고 버벅거린다. 영상에서 본 사람들의 버벅거림은 진정한 버벅거림이 아니었다. 진정한 버벅거림은 내 입안에 있었다.
연설문의 문장은 대부분 좋았다. 당연하겠지. 얼마나 고심해서 썼겠어.
영어 회화를 할 때 쓸만한 문장도 많아 보였다. 다만 내 입이 문제였고, 내 영어가 문제였다.
한 문장, 한 문단을 읽어 나가는 것 자체가 고난의 여정이었지만, 어쨌든 끝까지 읽기는 했다.
내 앞에 존재하지 않는 관객 앞에서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화장실로 숨고 싶었지만, 어쨌든 인터넷에서 출력한 문장들은 다 읽기는 했다.
아주 좋은 계기였다.
연설문을 읽는다는 건 생각보다 힘들다는 걸 깨닫게 된 계기.
그리고 웅변 잘하던 그 친구는 재능이 있는 아이였음을 깨닫게 된 계기.
[삽질 복기]
- 바로 체감하지는 못했지만 영어에 도움은 되었을 것이다.
- 아주 조금이라도. 아마도.
- 한 번 쭉 읽지 않고, 어려운 문장은 더 여러 번 반복해서 읽을걸.
- 그래도 시도를 해봤다는 데 의의를 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