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급한 불을 끄자
이게 다 그 임원들 때문이었다. 정말 피곤하게 만든다니까 진짜.
글로벌 회사 클라이언트가 한국에 왔다. 외국계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팀에서 영어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고(그래서 뽑혔고), 이 때문에 대리 나부랭이 주제에 글로벌 회사 임원들과의 회의에서 열심히 떠들어야 했다.
평소에 쓰던 자료들을 모아 회사 소개, 팀 소개, 한국 산업 현황 소개, 프로젝트 소개를 영어로 준비했다. 무리 없이 회의를 끝내고(아마도) 프로젝트 현장 설명을 해주러 가는 길에 임원의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프로젝트에 대해서만 물어보면 참 좋았을 텐데, 얘기는 한국 경제와 정치 상황에 관한 내용까지 이어진다.
아침에 호텔에서 조식 먹고 커피 마시는 동안 한국 신문 영어판에서 봤단다. 역시 글로벌 회사 임원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었다. 세상 돌아가는 상황에 관심이 많고, 항상 배운다.
아니, 아침에는 자야지 왜 출장까지 와서 커피를 마시면서 신문을 보고 그러세요?
저는 인간적인 인간답게 아침에 커피를 마실 시간도 없이 출근하느라 바빴습니다만?
한국 경제 및 정치 상황에 대해서 한국말로 물어도 답을 할까 말까인데, 왜 영어로 물어보고 그러시는지요.
회화 책과 미국 드라마로 배운(때운) 저의 영어의 가장 큰 취약점이 고급 어휘인 줄을 또 어떻게 아셨나이까?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한국 경제 및 정치 상황에 관심이 많았다(그게 다 자기네 비즈니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이었으니까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상황도 내가 원했던 것 이상으로 종종 생겼다.
어쩔 수 없이 고급 영어 실력을 급조할 방법을 찾아야 했고, 그렇게 찾은 것이 회의가 있는 날 아침 한국 영어 신문 기사 제목을 훑고 가는 것이었다. 한국 경제와 정치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지만, 그걸 영어로 표현하는 것에 부담을 느낄 때 쏠쏠한 도움을 받았다.
먹고살기 힘들지만 어쩌겠나.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는 것을.
[삽질 복기]
- 살길은 다 있다.
- 제목만 훑지 말고 제대로 읽고 갔으면 얼마나 좋아.
- 급할 때만 하는 게 아니라 습관적으로 했으면 얼마나 좋아.
- 저렇게라도 하게 만들어준 고객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