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맛이 좋다 좋아
'로망'이라는 근본 없는 단어를 잠시 데려오고자 한다.
소망, 이상, 바람, 기대, 꿈, 소원, 뭐 이런 비슷한 단어를 데려와 보는데 영 마음에 드는 게 없다. '로망'이라는 단어를 쓸지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열혈 한국인으로 돌아와 일단 그중 그냥 가장 무난해 보이는 '꿈'이라는 단어로 써보기로 한다.
오만가지 꿈을 늘어뜨린 길고 긴 목록에 '셰익스피어의 시를 영어로 즐기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영어의 꽃은 문학, 문학의 꽃은 시. 노래하듯 단어를 흩뜨리며 종이 위에서 춤추는 그 문장을 즐기는 궁극의 즐거움.
셰익스피어의 시를 원문만으로 읽어보려는 시도를 몇 차례 했다가 처절하게 패배한 후 잠시 찌그러져 있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피천득 시인이 번역한 <셰익스피어 소네트>가 보이길래 냉큼 집어 왔다.
영한 대역 도서라 한쪽에는 영어 원문이, 한쪽에는 한글 번역이 있다.
한글이 옆에 나란히 있으니 좀 덜 위협적이다. 한글을 한 줄 읽고, 영어를 한 줄 읽는다. 그러다가 한글을 두 줄 읽고, 영어를 두 줄 읽는다. 그러다가 한글을 한 쪽 읽고 영어를 한 쪽 읽는다. 영어를 읽는 동안 한글을 까먹으니 다시 한 줄씩 읽는 걸로 돌아간다. 역시 욕심은 나빠. 아주 나빠.
그래도 끝까지 읽었다.
힘겨웠지만, 한글 번역이 없었으면 더 힘겨웠겠지.
피천득 시인의 시를 음미하듯 셰익스피어의 시를 음미할 수 있는 날을 그리며 오늘도 영어 삽질을 한다.
열렬하게, 계속.
[삽질 복기]
- 원문부터 도전하는 건 역시나 무리였다.
- 시 말고 소설부터 먼저 시작하는 게 좋은 것 같다.
- 그냥 지금처럼 다양한 장르의 원서를 읽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 원문을 음미하며 즐기는 날까지 가자. 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