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의 습격
마블 영화에는 관심이 없다.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마블 없는 세상에서 살아도 아쉬울 게 없지만, 안타깝게도 집에 마블 영화를 좋아하는 양반이 하나 있다. 그 양반 때문에 아이언맨을 시작으로 캡틴 아메리카, 토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어벤져스, 앤트맨, 닥터 스트레인지, 스파이더맨, 블랙 팬서, 캡틴 마블, 이 모든 시리즈를 극장에서 봤다.
마블의 습격이 잠잠해지기 시작했고, 시련은 거기에서 끝나는 줄 알았다.
그렇지 않았다.
새로운 습격이 시작되었다. 이번엔 조카가 마블에 빠졌다.
장난감도 마블이고, 우산도 마블이고, 필통도 마블이다.
저항하기 어려운 이 파도 속에서,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로 했다. 이모표 영어 설레발로 역습을 시도해 보기로 한다.
조카와의 에듀테인먼트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마블 동화책을 샀고... 전략은 먹혔다.
마블 동화책을 받아 든 조카는 그림만 봐도 재미있다며 혼자서 마구 책장을 넘겼다. 혼자 있을 때도 글자는 하나도 못 알아보는데 한참을 펼쳐 본다고 했다.
나와 다른 걸 하고 놀다가도 "마블 책 볼래?" 하면 신이 나서 책을 골라 왔고, 내가 영어 문장을 읽어 주고 한국어로도 통역을 해주었다. 나름 영어 좀 한다는 이모의 자존심을 갉아 먹는, 이따금 나오는 희한한 의태어 같은 게 나오면 사전을 찾아보거나 아니면 그냥 대충 넘어갔다.
책 내용이나 그림에서 웃긴 점을 꼭 찾아내 같이 낄낄거렸다. 그게 아주 중요했다. 같이 낄낄거리고 있으니 나도 마블 동화책이 재미있게 느껴졌다(이런).
그렇게 책을 여러 번 돌려 보니 조카는 내가 읽을 다음 문장을 혼자 말하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고, 나는 아이언맨 전문가가 되었다.
역시, 모든 위기는 기회다.
[삽질 복기]
- 역시 재미가 제일 중요하다.
- 마블이 삶을 덮치는 운명을 거부할 필요는 없다.
- 나도 영어 말하기 연습이 된 것 같기도 하다.
- 마블에서 협찬이 들어온다면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협찬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