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너무나도 명확한 것
나갈 때가 되었는데 안 나간다.
분명 20년 전쯤에 퇴거 요청을 했는데 도통 나갈 생각을 안 한다. 명도 소송을 시도해 보려고 했지만 소송 자체를 할 수도 없고, 내쫓지도 못한다고 한다. 도대체 이런 법이 어디 있어?
일요일 아침에 거실에서 들려오는 디즈니 만화영화 방송 소리를 듣고 네발로 기어나오는 사자머리의 그 아이가 떠오른다. 성인이 된 후에도 그 아이는 내 안의 구석진 곳 어딘가에 붙어서 살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나갈 때가 이미 한참 지났는데 안 나간다. 나가라고 했는데 안 나간다. 쫓아낼 수도 없다. 현재 분위기를 봐서는 평생을 함께할 것 같다.
일요일 아침의 디즈니 만화영화를 좋아했던 그 아이는 성인이 되어 픽사 만화영화를 좋아하는 어른 아이가 되었다.
어린이를 위해 만들어진 영상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픽사 만화영화는 영어가 상대적으로 쉽다. 물론 지극히 '상대적'이다.
대화 속도도 '상대적'으로 약간 느리고, 말도 '상대적'으로 약간 더 또렷하고, 쉬운 문장도 '상대적'으로 많다.
비속어나 욕도 나오지 않아서 귀를 청정한 환경에 노출할 수 있다. 영어 공부를 핑계로 보면서 놀기에 아주 좋다는 얘기다.
디즈니플러스를 구독하기 시작하면서 픽사 만화영화 시리즈를 두루두루 보았지만, 그 중 <라따뚜이>, <니모를 찾아서>, <몬스터 주식회사>를 즐겨 보았다.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고, 일부 대사는 외울 수도 있다. 가끔 자고 일어나면서 어떤 장면이 눈앞에 그려지기도 한다.
그럼 모든 문장을 다 알아듣겠네?
글쎄?
여러 번 본다고 해서 모든 문장을 정확하게 다 알아듣게 되지는 않는다. 한국 영화도 그런 걸 보면 그냥 말귀가 좀 어두운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얼추 다 알아듣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한다. 한국 영화도 100% 다 못 알아듣는다는 점이 상당히 현실적인 기대치를 설정한다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그렇다.
다 핑계다.
영어 공부라는 핑계가 있어 아주 좋다.
[삽질 복기]
- 대본이나 전사문을 찾아서 보면 참 좋겠지.
- 그걸 소리 내서 읽으면 참 좋겠지.
- 외울 때까지 반복해서 읽으면 참 좋겠지.
- 그러면 참 좋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