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간다면 어떤 속도로 가는 것이 좋을까? 고속, 평균 속도, 자신만의 속도? 언제나 매번 같은 속도일까? 어떤 속도가 정답일까?
한동안 바빴던 일을 마치고 꿈이 돌아다니는 베란다에 나가보니, 분홍 달맞이꽃에 예쁜 단풍이 들었다. 며칠 전 펑펑 내린 눈으로 베란다 밖은 꽁꽁 얼었지만, 이제야 붉어지는 단풍을 보니 이질감이 들면서, 내 모습이 비치기도 했다. 분홍 달맞이꽃은 봄철 블로그 이웃에게 받아 늦은 봄부터 가을까지 꽃을 피우더니, 다른 식물처럼 해가 그리웠는지 점점 목을 길게 늘이기 시작했다. 분홍 달맞이꽃이 꽃을 피웠던 시기는 브런치 작가, 시인 등단의 시점이라, 유달리 그녀의 이야기가 싱그럽게 와 닿았다. 일반 달맞이꽃과는 다르게 온몸에 햇볕도, 달도 받아들이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그런 기운을 듬뿍 받아서인지 나도 열심히 도전했고, 지난해 좋은 소식을 얻었다. 분홍 기운은 가을을 지나며 빛을 잃기 시작해, 나에게 더 와 닿지 않았다.
분홍 달맞이꽃을 키운 것은 처음이라 늦은 단풍에 낯설었다. 베란다 밖의 나무는 가을부터 단풍을 준비했고, 아련하면서도 슬픈 단풍 한 자락 뽑아내고 그거로도 모자라 자신의 손까지 내어주고 나서야 겨울을 온전히 품었다. 분홍 달맞이꽃과 밖의 나무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밖의 나무는 빠른 속도, 세상 속도에 발을 맞추었지만, 분홍 달맞이꽃은 베란다에 있어서 인지 베란다 속도를 즐긴 듯했다. 분홍 달맞이꽃이 즐긴 속도처럼 나도 그런 속도를 즐기고 싶었다.
분홍 달맞이꽃이 즐긴 속도처럼, 현재 나는 3가지 진행을 하고 있다. 시, 글, 동화를 진행 중이다. 시인 등단 후에는 2달에 한 번 문예지를 통해 3개의 시를 발표하고 있고, 글은 브런치에서 3개의 브런치 북을 냈다. 브런치 출판 프로젝트에서 좋은 소식이 들리기를 기대했지만, 역시나 였다. 아마 나의 글을 잘 읽는 분이라면, 최근 2달간 글 올라오는 속도가 더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두 달 동안 출판의 여러 형태를 공부했고, 출판 프로젝트의 결과도 어느 정도는 짐작했다. 단순히 글을 쓰고, 브런치 북으로 묶고 좋은 결과로 바로 연결이 되려면, 여러 조건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요행수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현재 블로그 쪽 북은 글 보강을 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출판 형태도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다. 동화 쪽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 동화책을 읽고, 필사하고 있다. 때가 되면, 이쪽도 도전해 볼 생각을 하고 있다. 그때그때 시, 글, 동화의 완급조절, 깊이 조절을 하고 있으며, 그들 나름의 속도를 즐겨보기로 했다.
나름의 속도, 자신만의 속도를 즐기는 것이 쉬운 일일까? 바람, 햇볕에 낭창거린 분홍 달맞이꽃도 자신이 잘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말을 걸어주던 분홍 꽃이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려 알 수 없지만, 현재 그녀의 화분에는 씨앗, 새순의 흔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제 이렇게 씨앗을 뿌려, 작은 순을 키웠는지는 알 수 없다. 씨앗을 뿌려야 할 때, 그녀는 움직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나도 또 다른 씨앗을 뿌려야 할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동인회에서 봄에 출간하는 동인 문집 글을 신청받는다는 소식을 접했다. 처음에는 진행하고 있는 일이 있어 다음 기회로 미룰까 싶었다. 그러나 가을에 받아 두었던 바질, 분꽃 씨앗이 생각났으며, 얼마 전 프리지어 알뿌리를 심은 생각도 났다. 다시 한번 문집 원고 글을 꼼꼼히 읽었을 때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고, 동인 문집과 관련된 여러 글을 읽어본 결과, 씨앗을 뿌려야 할 시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씨앗을 심을 때는 씨앗을 심는 시기, 좋은 씨앗, 물 주기, 햇볕, 바람의 결 등 여러 여건을 잘 충족해 주어야 한다. 씨앗 심을 때처럼, 시 씨앗도 여러 여건을 따져 보았다. 시의 개수, 퇴고 날짜, 형식, 주제, 나만의 색 등을 맞추어 고르고, 퇴고해서 지난 주말에 최종 8개의 시를 제출했다. 작가에게 마감이라는 단어가 춤을 추게 하듯이, 시인에게도 그런 춤은 통했다. 번갯불에 시도 볶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아직은 시가 찾아올 때 쓰는 편이고, 꾸준히 시를 쓰고는 있다. 꾸준히 써오던 것이 있어 8개의 시를 내는 것이 가능했고, 예전에 써놓은 시도 다시 퇴고하여 문예지에 조금씩 내고 있다. 시나 글이나 한번 써놓으면, 나의 창작물이 세상 빛을 보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며, 세상 빛을 본 만큼 따듯한 온기를 품었으면 하는 생각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이런 식의 진행이지만, 이런 순들이 시집 내는데 발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시 하나 퇴고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시도, 글도 같이 퇴고하고 있어서인지, 조금은 속도를 내고 있고, 때론 취미가 아닌 시인이라는 페르소나에 익숙해져 가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자신의 속도를 알려면 무엇인지 꾸준히 해봐야, 그 속도와 감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자신만의 페이스, 속도를 유지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세상은 빨리빨리 변해가고, 그 속도를 즐긴 이는 추월차선으로 저만치 더 앞서 가기도 하고, 빠른 속도가 정답이고, 평균 속도라고 이야기할 때도 있다. 느린 속도를 즐기는 이는 때론 바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긴 항해에서 흘러야 할 때가 오면 때론 과속을 즐기다가도, 쉬어야 할 순간이 오면 다시 씨앗을 뿌리며 천천히 그 흐름을 즐겨보는 것도 좋을 거 같다. 여름에 즐겼던 분홍 달맞이꽃의 향을 기억한다면, 흐름의 속도도 잘 조절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글이나 시를 쓰면서도 매번 같은 속도로 결과물을 낼 수 없듯이, 같은 속도가 아니어서 마음 아파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같은 나무에서도 꽃을 피우는 시기는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론 빠름의 미학만이 아닌 느림의 미학까지 적절히 구사할 수 있다면, 그때야 말로 인생을 제대로 느낄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때론 주변의 꽃 향기도 맡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