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한 그 복숭아

복숭아빛 오후

by 리틀영

나는 납작 복숭아를 좋아한다.
쫀득하고 말랑한 과육, 한 입 베어 물기 딱 좋은 납작한 모양,
손바닥 위에 오밀조밀 담긴 모습지.


하지만 진짜로 이 과일을 좋아하게 된 건,
파리에서의 어느 저녁 때문이었다.

그곳은 마침 복숭아가 제철이
시장에 가면 나무상자에 수북이 담긴 납작 복숭아를 볼 수 있었고, 그 옆엔 치즈며 바게트며, 유럽 특유의 여유로움이 흘렀다.


그 풍경만으로도 좋았지만,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장면은 따로 있다.

사실 프랑스는 유학 생활을 하던 친구를 만나러 간 것이었다. 친구네 집은 높은 층에 있었고,
벽 전체가 거의 창으로 되어 있어 파리의 거리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어느 오후 나는 침대 위에 걸터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해가 슬슬 지고 있었다.
낯선 도시의 노을이 가라앉는 풍경.
그 순간 나는 어느 때 보다도 여행 중이라는 걸 실감했다.

분명 항상 보던 노을인데,
그날은 전혀 다른 세계에서 같은 해가 지고 있는 걸 보는 기분이었다.

납작 복숭아를 보면 그때가 떠오른다.
햇살 가득했던 창문, 시원한 바람
멀리서도 따뜻하게 느껴졌던 노을의 색까지.

작가의 이전글모네의 연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