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싫지만은 않아
무더웠던 제주도의 어느 오름에 올랐던 날,
땀을 뻘뻘 흘리는 내게 엄마는 말했다.
“땀을 왜 그렇게 많이 흘려?”
나는 답했다.
“흘리고 싶어서 흘리는 게 아니야.”
여름은 내게 그런 계절이다.
조금만 걸어도 티셔츠 속으로 땀이 주르륵 흐르고 어느새 온몸이 찐득거린다. 창문을 열어도 바람은 스쳐 지나가고 남는 건 뜨거운 열기뿐.
비라도 내리면 공기는 물기를 머금어 더 뜨겁고 무겁기까지 하다. 그런 밤엔 끈적해진 몸에 온갖 것들이 달라붙어 잠을 이루지 못한다.
습하고 텁텁한 게 꼭 공기뿐만은 아닌 계절.
그런데 왜일까.
여름이 지나간 자리엔 청량함이 남는다.
그건 정말로 여름이 남긴 것일까,
아니면 오아시스처럼 우리가 찾아낸 무엇일까.
여름의 마법을 알 수는 없지만,
그 오아시스는 이 작은 장면들로 남아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
나뭇잎 사이 열린 햇빛열매.
선풍기 앞에서 먹는 수박 한 조각.
달콤하게 녹는 아이스크림.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
밤하늘을 가르는 별똥별.
여름이 남기고 가는 조각들이 눈부시게 반짝여
나는 여름을 미워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