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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나 Apr 16. 2024

감정이 체했을 때는 눈물샘 따기

가라앉지 않으면 흘려보내는 수밖에



인생을 살면서 때때로 나를 괴롭히는 감정들 중에 가장 골치 아픈 것은 바로 막막함이 아닐까 싶다. 그 감정은 아주 교묘하게 구분되는데, 어떤 거대한 일에 대해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막막함이 있는가 하면 그 감정의 이유나 원인을 알 수 없어서 느껴지는 막막함이 있다. 감정의 결은 비슷하지만 그 해결방법은 다르다. 전자의 경우는 거대한 일의 한 구석부터 차근차근 일을 처리하는 것이 곧 해결방법이다. 모래 둔덕의 한 편을 무너뜨리는 것처럼 야금야금 일을 해치우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전반적인 견적이 보이고 대강의 계획과 함께 막막함도 분해된다. 반면, 후자의 경우는 그 해결방법이 몹시 무작위적이다. 그 감정의 원인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해결 방법도 흐릿한 안갯속에 있게 된다. 그래서 명치에서 이명처럼 울리는 언짢음에 계속 전력을 소모하면서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수밖에 없다. 현재의 상황에서 추측할 수 있는 불안의 요소들을 제거해 보고, 내가 좋아하는 활동을 하거나, 좋아하는 음식을 먹거나, 뭐든 하나 걸리라는 마음으로 마구잡이로 처방을 내린다. 그런데도 체한 것처럼 누적된 불편한 심기가 그대로 얹혀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번에도 도저히 떨쳐지지 않는 막막함을 허공에 주먹질을 하는 것으로 견뎌내던 나는 우연히 새롭게 알게 된 방법이 있어 한 번 말해보려고 한다.


이번에는 모든 집중력을 모아 불안을 잊는 열중 처방을 비롯해 맛있는 것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당근 처방, 대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며 내 감정의 사소함을 깨닫는 축소 처방까지 내렸지만 전혀 차도가 없는 상황이었다. 마지막 지푸라기로 나의 감정을 글로 적는 활자 처방을 내리고 일기장을 펼쳤다. 무심코 책장을 넘기다가 몇 장을 읽었는데 내가 몹시 슬픈 일을 겪었던 때의 일기였다. 꽤 큰 일이었기 때문에 그 시절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마치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눈물이 솟았다. 그렇게 눈물을 조금 쏟고 난 뒤에, 나는 한결 진정된 상태가 됐다는 걸 알게 됐다. 체했을 때 손 끝을 따서 피를 조금 흘려보내면 속이 편해지는 것처럼 눈물을 몇 줄기 흘리고 나니 그 틈을 타고 감정이 같이 흘러가버린 느낌이었다.


때로는 우는 것이 감정을 흘려보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건 어떤 이유가 있는 압박감이라든가 스트레스, 우울의 경우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대책 없는 막막함에 효과가 있을 줄은 몰랐다. 게다가 나는 울음을 잘 참는 편도 아니고 오히려 눈물이 무척 많은 편이라서 우는 것이 처방이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것이다. 툭하면 수도꼭지를 여는데 그걸로 효험을 느낀 적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어쩌면 이 눈물 처방이 알맞은 감정에 내려진 적이 없어서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와 오랜 세월을 지내오면서 이제는 나를 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종종 이렇게 새롭게 알게 되는 부분이 있다. 여러 시행착오와 실험들을 거치면서 나는 나를 더 많이 알게 되고 나와 더 가까워진다. 매 순간 나와 함께 있고 나를 돌봐줘야 하는 것은 나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나의 예후를 잘 살펴 줄 예정이다. 나를 관리하는 데 능숙해질수록 나의 시간과 인생을 내가 바라는 대로 보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 한결 기꺼워진 눈물을 반갑게 맞이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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