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적인 미장센과 '게르다'에 대하여
※아래 글에는 영화 <대니쉬 걸>의 내용과 등장인물에 대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잠들기 전까지 애매하게 시간이 떴던 어느 밤에, 넷플릭스를 뒤지던 나는 <대니쉬 걸>을 보기로 했다.
큰 고민 없이 이 영화를 고른 이유는 주연 배우인 에디 레드메인과 톰 후퍼 감독의 만남이 나에게 꽤 안정감을 줬기 때문인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역시나 그 안정적인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영화에 대해 짧게 설명하자면, 세계 최초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덴마크 화가, 에이나르 베게너(릴리 엘베)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쓴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실제 인물의 삶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 한다. 영화는 남자인 에이나르 베게너가 여성인 릴리 엘베로 깨어나는 시기를 담고 있는데 그 고뇌와 자유를 향한 갈망이, 섬세한 연기와 우아한 미장센으로 표현되었다.
톰 후퍼 감독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미장센과 출연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 사건의 비중이 적절하게 분배된 스토리와 영상에 완벽히 어울리는 음악까지 전반적으로 마음에 드는 영화였지만 이 글에서는 특별히 인상 깊었던 부분들과 가장 마음에 남았던 캐릭터인 에이나르의 아내 '게르다'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이 영화에는 인물을 비출 때 주변이 소품으로 가려지거나, 창을 통해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이 자주 등장한다. 그 시선은 뭔가 엿보는 듯한, 숨어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특히나 그 구도가 에이나르의 장면에서 나타날 때는 그의 망설임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에이나르의 망설임은 대부분 자신 안의 릴리를 마주하는 순간에 나타난다. 어떤 순간에는 갑작스러운 자각으로 인한 당혹스러움이고, 어떤 때는 릴리를 꺼내 주고 싶은 강렬한 열망이며, 어떤 지점에서는 에이나르와 릴리의 갈등의 순간이다.
숨어 있는 듯한 구도는 마치 에이나르 안의 릴리가 세상을 바라볼 때의 시선 같다. 영화 초중반에 보였던 릴리의 시선은 대부분 어둡고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곳에서 나타났다면, 후반부로 갈수록 그 시선은 사라지고 밝고 넓고 트인 곳에 존재하는 릴리의 모습이 주로 나타난다. 그 숨은 시선과 함께 에이나르의 망설임도 사라진다고 볼 수 있다.
에이나르가 여장을 하거나, 릴리로서 직업을 가지고 일할 때 카메라는 역동적으로 이동하고 릴리의 움직임 또한 경쾌하다. 내성적이고 수줍은 태도를 자주 보이는 에이나르와 달리 릴리는 자신감 있고 과감하다. 그런 릴리의 모습이 담긴 게르다의 그림 역시 크게 인기를 얻는다.
에이나르는 자신의 아내를 '아름답고 대담한 게르다'라고 표현한다. 게르다의 거침없고 대담한 면모를 여러 번 언급하는 에이나르는 아마 릴리로서 그런 게르다의 모습을 동경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에이나르는 굉장히 촉망받는 화가였지만 릴리로서 살아가면서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그건 아마도 에이나르가 그동안 자신 안의 릴리를 그림을 통해 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제 안의 릴리를 깨우고 릴리로 살아가게 된 이상, 숨겨진 릴리를 그림으로 표현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게르다는 고향의 풍경을 그리는 에이나르를 보며 당신이 언젠가 저 그림의 늪 속으로 사라질 것 같다고 말하는데, 그 풍경화가 릴리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면 결국 정말로 에이나르는 릴리 속으로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영화를 감상하기 전, 이미 나는 줄거리 소개를 통해 주인공이 최초의 성전환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목인 대니쉬 걸이 뜻하는 덴마크 여자는 당연히 릴리 엘베(에이나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 중반에 직접적으로 '대니쉬 걸'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에이나르의 친구 '한스'가 게르다를 지칭할 때였다.
그러고 보니 덴마크의 화가인 게르다 역시 '대니쉬 걸'이었다.
이 영화는 '대니쉬 걸'로 깨어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는 릴리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의 아내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서 함께 고통을 겪고 동시에 자신만의 고뇌에 분투해야 했던 게르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대니쉬 걸>이라는 제목이 말하는 덴마크 여자는 릴리와 게르다 모두일 거라 생각한다.
두 사람이 단단히 얽혀있는 만큼 게르다도 큰 마음고생을 하는데, 그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영화에 잘 나타나 있어서 영화 중반에는 게르다가 참 애처롭게 느껴졌다. 에이나르의 부재를 실감하며 슬퍼하고 그리워하는 모습이 굉장히 안쓰러워서 조금이나마 의지할 수 있는 한스가 등장했을 때 내 마음이 다 기꺼울 정도였다.
에이나르가 처음 미묘한 감각을 자각하게 되는 것은 아내인 게르다의 작품 모델을 하기 위해 스타킹과 구두를 신고 발레복을 걸쳤을 때였다. 처음 여장을 하게 되는 것도, 여자의 걸음걸이와 손동작을 따라 하게 되는 것도 게르다의 제안이었다. 그 후에 아는 사람이 없는 파리로 가게 되고, 본격적으로 릴리로서 그림 모델이 되어 아름답고 강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는 것도 게르다 때문이었으며 결국 성전환 수술을 하게 되는 것도 게르다가 의사를 소개해준 덕분이었다.
이는 게르다가 이 영화에서 비중이 큰 역할이라는 걸 나타내기도 하지만, 좀 더 본질적으로는 영화 속 사건들 대부분이 게르다로 인해 일어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영화에서 처음 등장하는 인물과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게르다'다. 인물로는 처음으로 게르다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며 영화가 시작하고, 그림 속 풍경에 찾아간 게르다가 릴리의 스카프를 날려 보내며 영화가 끝난다. 영화의 시작에서 게르다는 무표정한 얼굴로 에이나르의 그림을 보다가, 이내 답답한 옷을 입은 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연기-에이나르는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연기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하고 있는 에이나르를 바라본다. 하지만 영화의 말미에서 릴리의 스카프가 바람에 훨훨 날아오르는 것을 바라보는 게르다는 환하게 웃고 있다. 이 장면들은 릴리가 비로소 해방되었다는 상징인 동시에 릴리로 살기 위해 자신의 삶까지 모두 걸었던 에이나르(릴리)를 옆에서 지켜보고 함께 걸었던 게르다의 존재 또한 보여줬다.
영화의 등장인물은 모두 절대선일 수도, 절대악일 수도 없기 때문에 그들의 입체적인 모습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의 심정에 함께 몰입하게 되는 인물 중심의 영화인 만큼, 에이나르의 도덕적 해이는 나의 감상을 방어적으로 만들었다. 에이나르는 게르다와 부부 사이인데, 아무리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할지라도 둘의 관계에 합의된 변화가 전혀 없던 시점에 다른 사람과 키스하거나 밀회를 즐기는 것은 불륜이다. 이건 에이나르나 상대의 성별과 무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또한, 본인의 정체성을 깨닫는 과정에서 이미 충분히 공감되는 릴리의 분투가 있었는데 굳이 한 달에 한번 이유 없이 복통과 함께 코피를 흘린다는 등의 근거를 알 수 없는 물리적 장치를 넣은 것이 조금 의아했다.
전체적으로는 화가의 이야기를 그린 만큼 릴리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유독 그림 같은-정말 말 그대로 명화처럼 보이는- 미장센이 연출되거나, 1920년대의 유럽 풍경을 영상미 가득하게 담아냈다는 점이 더욱 영화를 아름답게 만들었다.
이 영화는 위태로우면서도 차분한 분위기를 아주 잘 보여줬다. 은근하게 흐린 날씨와 불안하면서도 유려한 선율의 음악, 배우들의 섬세하지만 절제된 연기가 모두 그랬다. 그 적절한 균형이 영화의 여운을 더욱 길게 만들었고, 나는 릴리와 게르다의 눈빛이 떠오르는 마음이 습한 날 다시 한번 <대니쉬 걸>을 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