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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나 Nov 10. 2021

제95회 점자의날 기념식에 다녀오다.

'온누리에 빛나는 한글 점자' 한글 점자 창제를 기념하며


지난 11월 4일, 인천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열린 제 95회 점자의 날 기념식에 다녀왔다. 


점자의 날은 송암 박두성 선생이 시각장애인을 위해 한글 점자를 만들어 반포한 1926년 11월 4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이라 불리는 송암 박두성 선생은 우리나라의 문화를 빼앗기는 혹독한 시기였던 일제 강점기에 제생원의 학생들과 우리의 한글 점자를 마련하고 제정하고 지켰다. 훈맹정음은 해방 이후에도 계속 연구되어 수정과 보완을 반복했다. 그렇게 공들여서 만들어진 문자가 시각장애인에게 읽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이번 제95회 점자의 날을 맞아 인천광역시시각장애인복지연합회에서 개최한 공모전에 수필을 응모하여 장려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그 덕에 점자의 날 기념식 식순에 포함된 시상식에 참석하게 되었고 그건 굉장히 새롭고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전에 일을 하면서 나의 몫으로 나온 명함이 점자 명함이었는데 그때부터 난 점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난 점자에 '그런 것도 있다.' 정도의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시각장애인들이 실질적으로 사용하는 문자라는 생각을 하지못하고 글을 적고 싶다면 적을 수 있는 하나의 기능적 도구라고만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점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이후 일상생활에서 점자를 보면 이따끔씩 생각에 빠지곤 했다. 뭐라고 쓰여있는걸까? 여기에 이렇게 적혀있으면 시각장애인들이 쉽게 찾아서 읽을 수 있나? 코로나19로 방역 시국이 되고서는 항균 필름이 붙어있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보면서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이러면 만져서 읽을 수가 없는데... 그러다 최근 개인적인 명함을 파면서 그곳에 점자를 넣게 되었고 제작을 준비하면서 조금 더 실질적인 과정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점자 기념일 시·수필 공모전이 열린다는 걸 알게되어 글을 쓰게 된 것이었다.


덕분에 나는 점자도서관과 시각장애인복지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주변 도서관에 점자책이나 큰글씨책을 비치해놓은 구역이 있는 것은 알았지만 점자도서관의 존재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인천광역시시각장애인복지관 바로 옆에 인천 최초의 점자도서관인 송암 점자도서관이 있어서 실제로 방문해볼 수도 있던 것이다. 나는 참 많은 당연한 사실들을 놓치고 있었다. 청소년복지관과 노인복지관처럼 각 계층마다 필요한 복지에 따라 기관이 따로 필요한 것이 당연하다. 장애인들이 가진 장애의 종류도 제각기 너무 다르고 많으니 각 장애에 따른 시설도 마찬가지로 따로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난 비장애인의 시선으로 그저 '장애인복지관'이 있으면 복지가 될거라고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나의 시야가 얼마나 좁았는지 실감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일찍 행사장에 도착해서 나에게 연락을 주신 담당자분을 만났다. 기관 직원분들은 기념식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줄 다과를 포장하고 계셨다. 떡집 박스에 아침에 갓 쪄서 도착한 것 같은 무지개떡이 가득 담겨있었다. 자리에 앉아 대기하고, 리허설을 하고, 기념식이 시작됐다. 식순을 확인하니, 공모전 시상 뿐 아니라 공로자분들 표창도 있었고 장학금 수여식도 있었다. 인천광역시장을 비롯해서 많은 분들의 축사와 기념사를 들을 수 있었고, 점자 변천사를 낭독하고 점자기념일 노래를 제창하기도 했다. 관계자분들이 공들여 체계적으로 준비한 행사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오는 길에 받은 다과 패키지에서 은근한 온기가 느껴졌다. 고운 색의 말랑한 무지개떡이 그때까지도 따뜻했다.


그 날은 내가 살면서 한번에 가장 많은 시각장애인분들을 뵌 날이었다. 행사를 관리하고 안내하는 비장애인 직원들과 시각장애인 참석자분들 모두 활기차게 각자의 역할을 하고 계셨다. 그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모든 과정에서 그동안 나의 유난스러움이 얼마나 번지수를 잘못 찾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일상에서 시각장애인을 마주칠 때, 그 분이 활동하기 불편하거나 문제가 있을까봐 괜히 앞서 걱정하고 유난 떨 것이 아니었다. 각자 삶의 방식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필요한 순간에 도움을 드리고 그냥 함께 살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내가 유난을 떨었어야 하는 부분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함께 사는 사회에 꺼져있는 바닥이 없는지 점검하는 일이었다. 시각장애인들이 잘 걸을 수 있나? 가 아닌 시각장애인들이 걷는데 문제가 없는 도로인가?를 생각해서 그들의 보행권에 대해 확인했어야 했고, 제도나 시설에 대해 점검하고 요구하는 목소리를 보탰어야 했다. 



따뜻하고 말랑했던 무지개떡.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았다.



5년 후면 훈맹정음이 반포된 지 100주년이 된다. 하지만 점자법이 시행된 것은 2017년으로 불과 4년전이다. 사회에서 점점 많은 다양성이 고려되고 존중받고 있지만 역시나 아직은 더 속도를 붙여야하는 때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인식은 물론이고 사회의 직접적인 제도와 복지의 개선이 필요하다. 앞으로 점자의 사용과 시각장애인들의 생활에 더 많은 당연함들이 자리잡기를 바란다. 그동안 당연히 존재했지만 내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세상의 한 부분을 이번 기회에 잠시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깨달은 생각들을 놓치지 않고 나부터 앞으로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작은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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