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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나 Jan 16. 2023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는 모르지만 오해입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려고 하면 머뭇거리게 된다. 이유는 브런치 속 나는 내 의도와는 달리 너무 무겁고 딱딱한 화자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그렇게 진지한 사람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엄청 가볍다거나 혹은 재치 넘치는 사람도 아니지만, 아마도 그냥 왔다 갔다 하는 사람 정도 일거다. 엔간히 느슨한 나는 초반의 내 여행기만 보더라도 대충 느낄 수 있다. 여행지에서의 일화나 그걸 말하는 태도만 봐도 그렇게 막 철학적인 사람은 아니니까. 근데 브런치에 올리는 글은 대체 뭐가 그렇게 심각한지 모르겠다. 아마도 여러 번 고민해서 그런 듯한데, 대부분의 글들은 퇴고를 몇 번 거치다 보면 '근데 어쩌라고...?' 싶어서 그냥 삭제하고 만다.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근데 이게 이렇게 문자화될 만한 일인가? 심지어 게시를 할만한...?


평소 친구들과 이야기하거나 카톡을 할 때만 해도 나오는 대로 되는대로 잘만 말하면서 브런치에 쓸 때는 무슨 결재서류 올리듯이 고민하게 된다. 물론 구독하시는 분들도 있고(정말 감사합니다.) 브런치 이용자들에게 얼떨결에 노출될 수도 있는 거니까 당연히 영양가 없는 말만 맨날 해대는 건 안 되겠지만 없는 살림에 맨날 진수성찬을 차려보겠답시고 고집 쓰는 것도 좀 아닌 것 같긴 하다. 허술하고 맛없어도 삼시세끼 먹는 게 12첩... 아니 한 8첩 반상으로 일주일에 한 끼 먹는 것보다는 낫겠지.


영화 리뷰만 해도 그렇다. 얼마 전에 <공조2:인터내셔날>을 봤다. 재밌었고, 내 예상보다 내용이 촘촘해서 맘에 들었다. 하지만 리뷰를 쓰려니까 뭔가 예술적이라거나 의미 있거나 작품성이 높고 평론가 평점이 높은 영화를 골라야 할 것 같았다. 이동진님도 상업영화, 예술영화 구분 없이 평론을 하시는데 내가 그걸 고르고 있었다. 평소에 취향은 몹시 대중적이면서도 그랬다. 근데 그렇다고 또 예술영화에 대해 써보자면 그걸 적절히 분석하고 녹여낼 만한 능력이 없어서 리뷰를 못한다. 멋진 영화를 보고도 '와, 연출 쩐다! 와, 연기 미쳤다! 와, 미장센 굳~' 이런 말 밖에 안 하면서 뭔 예술영화를... 물론 영화의 종류를 떠나서 평론은 그 평론 자체로 평가되는 거지만 심지어 내가 하는 것은 평론도 아니다. 


이렇게 편안한 이야기를 하자니 브런치 분위기가 너무 경직되어 있고, 어려운 이야기를 하자니 너무 나답지 못해서 결국 이렇게 선언 아닌 선언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특별히 무게 있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매번 그렇게 진지하고 심각한 사람은 아니에요. 아마도 실없는 사람일 거고... 사실 저는 저에게 본인이자 당사자라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 브런치가 더 물렁물렁한 곳이 되어야 하는 건 맞는 것 같습니다.


이제 와서 지금까지 이랬던(?) 이유를 찾아보자면, 아마도 브런치는 다른 플랫폼에 비해서 나름의 주류 분위기와 절차가 있어서 그랬던 게 아닌가 싶다. 일단 대부분의 브런치 글들이 정보성 글처럼 도움이 될만한 유익한 글들이다 보니 조금 기가 죽은 것도 있었다. 그리고 처음에 브런치 작가 심사를 위해 임시저장글을 제출할 때, 진지한 척을 엄청나게 했기 때문에 도의적인 약속으로 계속 그런 척을 해왔다. 하지만 지금쯤 브런치팀도 방심하실 것 같고, 광고성이라던가 문제가 될만한 글만 아니면 어떻게... 이제 손 쓸 방법이 없지 않으실까? 나는 이렇게 변방에서 조금씩 브런치에 헛소리 비중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하하.


아무튼 그래도 그동안 30여 개의 글을 올리면서 형성된 분위기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갑자기 본래의 생각들을 풀어놓으면 놀라실 것 같아 이렇게 미리 안내드리게 되었다. 아마 앞으로는 좀 더 타 플랫폼의 블로그에 올릴 법한 가벼운 글을 쓰게 될 것 같은데, 모든 글을 한 곳에 모아놓으려는 나의 야심이니 부디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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