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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나 Sep 26. 2023

직감도 우연히 일어날 수 있나요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를 듣고



글을 쓸 때나 글을 읽을 때,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개연성을 중요시하는 나는 장치 없는 우연을 불신하는 경향이 있다. 마침 그날 '우연히' 두 사람 모두가 똑같은 장소에 똑같은 시간에 방문하고 싶어서 '우연히' 만난다거나, 늘 다른 카페에 가던 주인공이 그날 따라 이유 없이 변화를 만들어 들어간 카페에서 '우연히' 상대방을 만난다던지 하는. 그런 우연이 낭만적인 만큼이나 나는 곱씹어 의아해하곤 했다. 아니, 어떻게 둘 다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그런 느낌이 들어? 그 타이밍이 5분만 늦었어도 못 만나는 건데? 두 사람의 재회가 그런 우연의 결과로 이뤄질 때면 가끔 나는 너무 손쉽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만남에 집중해서 그 이유에 대해서는 너무 소홀했다는 비판을 하며.


그런데 인생에는 생각보다 그런 우연이 즐비한 것 같다. 내가 뭐든 다 아는 것처럼 개연성이 어쩌고 했지만 실제 인생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우연이 존재하고 그 우연으로 인해서 굴러가는 삶의 부분들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겪은 감각의 우연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나는 불안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면 기타를 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기타를 칠 줄은 모른다. 전에 한 번 배워보려고 기타를 장만했다가 첫 번째 굳은살이 다 배기기도 전에 손가락이 아프다면서 바로 기권했다. 그래서 연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냥 내 배 앞에 손을 가져가서 위아래로 마구잡이로 흔들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물론 실제 기타 연주는 마구잡이로 흔드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 방에서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손을 휘젓고 있고 내 옷소매가 퍼덕거리는 소리 밖에는 들리지 않지만 그래도 내 상상 속에서 일렉기타의 지기장장 소리가 울린다고 생각하면 뭔가 속이 시원해진다. 이 근본 없는 에어기타가 내 불안의 일시적 진정제가 된다.

그리고 나는 평소에 길을 다니면서 오토바이를 특히 조심하는 편이다. 사고 위험성 때문에 오토바이를 타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속이 답답할 때는 왠지 머릿속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나를 상상한다. 타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냥 상상 속 내가 이미 내달리고 있다. 영화 속에서 봤던 바퀴가 두껍고 커다란 오토바이를 타고, 물론 그 와중에도 안전장비를 단단히 착용하고, 아무것도 없는 도로를 질주한다. 그 도로는 때로는 수평선을 향하고 있고, 때로는 노을을 뒤로하고 있고, 때로는 사이버펑크적 네온사인을 배경으로 하기도 한다. 일상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 나는 내 머릿속의 도로를 질주한다.


그러다 몇 년 전에, 놀랍게도 이렇게 근본 없는 두 가지 상상이 모두 들어간 노래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는 노래가 있다니. 내가 이 노래로 인해서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기에는, 나는 이 노래를 알기 전부터 저런 상상들을 해왔다. 그렇다면 김창완 씨도 나와 같은 충동을 느꼈던 적이 있는 걸까? 아니면 뒤로 이어지는 다른 노래 가사들처럼 그저 어떠한 형식을 파괴하거나 펼쳐지는 상상력에 대한 가사인 것일까? 내 상상의 주요 원료가 되는 불안이나 답답을 이 노래에서 찾아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정말 특이하고 놀라운 우연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연을 너무나도 불신한 나머지 "아마도 나도 기억이 안나는 어린 시절에 '우연히' 저 노래를 들은 적이 있고 그게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다가 이렇게 발현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했지만, 사실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그냥 우연인 것이다. 세상에는 가끔 이렇게 다른 사람이 나보다도 더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순간이 있다. 


저 노래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어떻게 탄생하게 된 건지는 모르지만 저런 특이하고 논리적으로 알 수 없는 노래의 가사를 내가 직관적으로 느낀 적이 있다는 게 몹시 인상 깊었다. 단순히 가사를 넘어서 그 음률까지도 나의 상상에 아주 적절한 분위기를 불어넣어준다. 요즘처럼 에어기타가 필요한 시기에 최고의 배경음악이다. 나는 오늘도 베란다에 서서 빗줄기가 떨어지는 밖을 내다보며 허공에 기타 줄을 튕긴다.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



https://www.youtube.com/watch?v=ZnzjHsfD2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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