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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나 Jan 17. 2022

해그리드를 기다리는 어른이 되어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보고

@live-now@live-now

※아래 글에는 영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내용과 등장인물에 대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1년의 특별한 날 꼭 보는 영화들이 있다. 할로윈에는 꼭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의 악몽>을 보고, 크리스마스에는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의 <나 홀로 집에 2>를 본다. 그게 나만의 외국 명절을 보내는 루틴이다.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 친구는 크리스마스에 꼭 해리포터를 본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영화채널에서 크리스마스 당일에 해리포터 시리즈를 마라톤 방영해주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방법으로 아늑한 공간에서 해리포터 시리즈를 보는 것을 선택하는 듯하다.

내가 어렸을 때는 다들 관용구처럼 '올해 크리스마스는 케빈이랑 보내야지.' 같은 말을 하곤 했었다. 케빈은 나 홀로 집에 시리즈의 주인공이고, 그만큼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것으로 통용되는 영화였다. 나 홀로 집에 시리즈의 첫 영화가 1990년에 개봉하고, 해리포터 시리즈의 처음인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2001년 개봉인 걸 보면 각자 한 시대의 감성을 구성하는 요소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두 시대에 적당히 걸쳐 감성을 키워온 내가 아직까지 <나 홀로 집에>를 고집한 이유는 내가 한차례 해리포터와 결별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처음 책으로 접한 해리포터는 단박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고, 영화가 개봉하고 난 후에 나는 온통 정신을 빼앗겨 거의 혼미할 지경이었다. 나는 해리포터와 그의 세계가 너무나도 좋았다. 나의 현실이 흐려지고 그 세계에 소속되지 못하는 게 괴로울 정도로. 나름대로 성실하고 야망찬 어린이 었던 나는 나의 미래를 위해, 성실한 학업을 위해 영화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 이후로는 의도적으로 해리포터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지나고 나서 안 사실이지만 마침 시기가 딱 맞아떨어진 덕분에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감독인 크리스 콜럼버스가 연출을 맡은 1,2편까지만 영화를 본 상황이 되었다.

*전에 다른 게시물에서 한번 언급한 적이 있었다. > https://brunch.co.kr/@live-now/5 <


작년 크리스마스에도 역시나 <나 홀로 집에 2>를 본 나는 문득 해리포터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는 나의 관심과 일상을 너무 많이 차지해서 경계하게 되었던 그 시리즈가 이제는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힘든 일이 겹친 시기이기도 했고, 마음을 쏟아서 좋아하던 것들에 동시에 여러 변화들이 생기면서 마음 붙일 곳이 사라져서 새로운 삶의 낙을 찾고 싶은 때였다. 정말 삶의 낙이 없어서 조금은 절박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나를 현실로 도피하게 만들었던 영화를 이제는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찾게 되었다.


20년 동안 더 넓고, 어쩌면 더 좁은 시야를 갖게 된 나에게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생각보다 더 따뜻하고 귀엽고 아름답고 대단한 영화가 되어있었다.

어렸을 때는 영화의 마법세계에 압도되고 환상에 감겨 호그와트를 동경했던 기억이 난다. 신기한 마법이라던가 특이한 마법세계 간식들, 마법 빗자루와 지팡이 같은 여러 신비로운 컨셉들... 그래서 내가 했던 상상은 주로 내가 호그와트에 간다면? 내가 마법사라면? 내가 해리의 친구라면? 같은 것이었고, 영화에 나오는 젤리나 초콜릿을 먹어보거나 마법 빗자루를 타고 퀴디치 게임에 참가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영화를 다시 보니 내가 동경하게 된 부분이 많이 달라진 것을 느끼게 되었다.




해리포터의 11살 생일에 해그리드가 직접 구워서 가져다준 케이크


가장 힘든 순간 나를 데리러 와주는 든든한 친구

영화 속에서 해그리드는 해리가 가장 힘든 순간에 말 그대로 마법처럼 등장한다. 학대에 가까운 방치를 당하다가 호그와트 입학서를 받은 이후로는 거의 감금 수준의 도피를 강요당한 해리는 36개의 생일 선물을 받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동갑내기 사촌과 달리 혼자서 흙바닥에 손가락으로 케이크 모양을 그려 자신의 생일을 쓸쓸히 자축한다. 심지어 생일이 시작된 것도 잠든 사촌의 손목시계를 보고 홀로 자정을 확인한 것이었다. 그런 해리에게 해그리드는 누구보다 위풍당당하게 나타나 직접 구운 레터링 케이크를 선물하고, 부모님의 명예를 지켜주고, 호그와트에 데려가 준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나에게도 해그리드가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힘든 나의 현실에서 나를 꺼내 주고 제대로 된 곳으로 나를 데려가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른이 되면서 어려운 상황의 깊이는 깊어지고, 거기서 빠져나오는 것도 더욱 오롯이 내 몫이 된다. 게다가 맘껏 힘들어하거나 슬퍼할, 화낼 여유마저 없이 그 일을 해결하고 수습할 생각부터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나를 번쩍 일으켜서 다이애건 앨리(마법 상점이 많은 번화가)에 데려다 줄 든든한 거인 혼혈 친구를 기다리게 된다. 더즐리의 별장에서 나를 구해줄 친구를.



수많은 금화로 아름답고도 위용 있는 미장센을 보여주는 장면


나는 몰랐지만 사실 난 돈 걱정할 필요가 없었어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사실 금화라는 것이 영화나 여러 미디어 작품을 통해 그 가치를 예상할 수는 있지만, 실생활에서는 잘 실감이 되지 않는 화폐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저런 이미지를 보았을 때 진짜 금화보다도 금화 초콜릿이나 게임 속에서 점수 획득용으로 튀어나오는 금화가 떠오른다. 그런데 그런 금화를 저렇게 보안이 철저한 은행에 아주 잔뜩 정갈하게 쌓아놓으니 그 원론적인 가치를 한 번에 보여주는 장면이 완성되었다.

종종 어른들은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들을 한다. 잊어버린 집문서나, 전혀 몰랐던 갑작스러운 유산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고. 그런 막연한 바람이 현실이 된 이 장면은 경제력이 전혀 없는 어린이인 해리의 가장 걱정스러웠던 부분이 한 번에 해소되는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늘 먹고사는 문제를 기저에 깔고 사는 현대인의 입장에서는 큰 시름을 더는 저 순간이 몹시 부러웠다.


파자마 위에 가족 스웨터를 입은 귀여운 론


아늑한 휴게실에서 친한 친구와 맞는 크리스마스

12월 24일 밤 10시 32분 59초부터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시작하면 크리스마스가 되는 자정에 론과 해리가 나누는 '해피 크리스마스'를 들을 수 있다. 현실의 시간에 맞춰 주인공들과 같이 크리스마스 인사를 나누고 싶은 이유는 그 아늑하고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함께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핀도르의 휴게실이 유독 아늑하게 느껴지는 건 주인공인 해리가 호그와트를 가장 편안하게 느껴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늘 저 순간을 동경하고 종종 막연하게 그리워한다. 내가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공간에서 특별한 날에 가장 친한 친구와 선물을 열어보는 순간은 소중할 수밖에 없다. 어렸을 때는 '신비로운 공간에서 보내는 특별한 날'이라서 저 순간이 멋지게 보였다면 지금은 '편안한 공간에서 좋아하는 친구와 보내는 느긋한 시간'이라는 게 나에게 와닿는 부분이 되었다.


특히나 론이 영화 속 음식을 야무지게 잘 먹었다.


이제는 그림의 떡이 아닌 온갖 맛이 나는 젤리와 음식들

어린 시절에는 영화에 나오는 간식들을 굉장히 먹어보고 싶었다. 물론 마법세계의 간식이라 신기해서 궁금한 것도 있었지만 비슷하게 만든 제품이라도 좋았다. 마법 현상보다는 그냥 그런 특이하고 이국적인 느낌의 간식을 영화와 똑같이 먹어보면서 그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온갖 맛이 나는 강낭콩 젤리와 입학 연회에서 론이 열심히 뜯어먹던 훈제 닭다리가 그랬다. 그때는 바비큐 치킨 같은 외식메뉴의 선택권이 부모님께 있었고 일반 강낭콩 젤리도 즐겨 사 먹기에는 꽤 비싼 편이었다. 놀이공원이나 큰 팬시점에 가면 강낭콩 젤리를 투명한 전시 용기에 종류별로 담아놓고 원하는 젤리를 조금씩 덜어가면 무게 당 가격을 매겨서 팔았는데 조금만 담아도 금방 내 용돈 예산을 웃돌았다.

그 때문인지 나는 어른이 되고 나에게 경제력이 생긴 이후로 유독 그런 쪽에 큰 고민 없이 돈을 쓰곤 했다. 여행지에 가서 젤리 구역이 보이면 지나치지 않고 꼭 봉투에 넉넉히 담아서 샀고, 아이스크림이나 슬러시, 솜사탕 같은 간식을 자유롭게 사 먹었다. 이런 여유에서 난 내가 새삼 어른이 되었다고 느낀다. 나는 이제 해리포터 영화를 볼 때 바비큐 치킨을 시켜 론과 함께 뜯을 수도 있고, 벽난로 앞에 앉아있던 론처럼 따뜻한 이불 안에서 강낭콩 젤리를 먹을 수도 있다. 3편인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서 해리가 한밤 중에 침대에서 쿠키를 먹는 장면을 볼 때 나도 꽤 근사한 쿠키를 준비해서 함께 먹었지만 그 즐거운 감각과는 별개로 '해리 쟤는 저 시간에 침대에서 쿠키를 먹으면 이는 잘 닦고 자는 건가?' 하는 생각부터 하는 나는 확실히 어린 시절과는 시선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았다.


 

제대로 된 방 하나 없이 먼지가 떨어지는 계단 아래 벽장에서 겨우 지내던 해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움이 크다면

앞서 말한 새로운 동경과 짙어진 그리움보다도 더 크게 달라진 부분은 해리에 대한 마음이었다. 어렸을 때는 해리가 멋지고, 대단하면서도 가끔은 내가 해리보다 더 잘 해낼 것 같고, 해리는 고생 끝에 낙이 온 행운아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내가 해리와 같은 어린아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저 놀랍고 다행스러운 변화들보다 지난 11년간 겪은 해리의 고통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크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모르는 해리가 무조건 겪어야 했던 그 모든 결핍과 잘못된 훈육, 원망, 포기는 어린아이에게 너무 혹독했다. 이후 많은 것이 변한 것은 다행이지만 지난 11년은 돌아오지 않고, 그때의 고통은 해리의 성장과정에서 극복해나가야 할 하나의 과제가 될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해리가 가진 유명세가 마냥 대단해 보였다면, 지금은 그로 인한 불편함과 실제로 겪게 되는 터무니없는 어른 취급이 그저 안타깝다. 게다가 앞서 말한 엄청난 유산도 결국 부모님을 잃은 후 물려받은 거라고 생각하면 마냥 안쓰러울 뿐이다. 이제는 내가 해리포터와 그의 친구들보다는 해리를 돌보던 교수님과 주의 어른에 더 가까운 사람이 된 것이다.




같은 감독의 작품인 <나 홀로 집에>와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닮은 점이 많다. 영리하고 용감한 덕분에 조금은 말썽쟁이인 주인공이 고난을 극복하고 적을 물리쳐서 결국은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과 행복하게 재회한다는 점이 그렇다. 크리스마스에 이 영화들을 보는 이유는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지막 결말이 주는 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치유의 분위기가 건네는 위로는 한 해가 마무리되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우리의 1년을 소박하지만 따뜻하게 장식해준다. 현실을 마주하고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잠시 피해서 숨을 돌리는 것도 필요하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나에게 훌륭한 도피처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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