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립나 Nov 24. 2023

글이 안 써질 이유가 뭔데요

집중력, 인내심, 자신감 0%




최근에 몇 가지 신변의 변화가 생긴 것을 핑계로 글쓰기의 박자를 놓쳤다. 글을 쓰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닌데 도통 집중이 안 됐다. 노트북 앞에 앉아서 그냥 가만히 있거나 음악을 듣기도 하고. 뜬금없이 익숙한 단어들의 유래 같은 걸 찾아보면서 시험을 앞둔 학생처럼 딴짓에 몰두하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연재하는 글이 내가 원하는 간격보다 훨씬 띄엄띄엄 완성되고, 하루종일 노려보는 문서창에는 '월월아아아아...'라고만 쓰여있는 걸 보고 대체 내가 지금 글이 안 써질 이유가 뭔지 진지하게 의문이 들었다. 물론 모든 일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너무 의아하잖아요. 대체 내가 지금 왜? 내가 뭔데 글이 안 써져 뭐 얼마나 대단한 걸 쓴다고?




보통 소설을 쓸 때는 이야기가 풀리지 않고 사건이 마무리되지 않는 고비에 걸렸을 때 글쓰기가 막히곤 한다. 근데 나는 지금 써야 할 이야기가 이미 설정되어 있고 문장으로 옮기기만 하면 되는데 그 문장이 왜 나오지 않는 걸까? 주인공들이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집으로 가는 길 한 문단을 쓰는데 몇 시간씩 걸리는 이유도 모르겠고 그렇게 힘들게 만들어낸 문장마저도 매끄럽지 않아서 퇴고만 오천 년을 해야 하는 것도 너무 답답하다. 아마도 이건 집중력 문제인 것 같다. 스스로 뛰어든 도파민 생성의 굴레에 빠져 진득하게 진행해야 하는 업무에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집중력이 아작 났을 때는 결국 '질보다 양' 방법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조각난 집중력의 순간들을 사금채취하듯 모아서 결과물을 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해가 날 때는 볕 아래서 걷고 해가 기우는 순간부터는 계속 책상 앞에 앉아 있다. 그래도 결국 반 쪽도 채 못 쓰고 몇 시간 동안 캐럴만 실컷 들은 사람이 되기도 하지만 이렇게 분심의 물길을 들여다보면 점점 사금의 알갱이가 더 커질 것이라고 믿는다.


또 하나의 문제는 나의 인내심에 대한 것이다. 내가 쓰고 싶은, 내 마음에 드는 글을 쓰는 것을 목표로 잡고 시작한 일이라서 다른 외부적인 것에는 신경 쓰지 않기로 결심을 했는데 수년이 지나다 보니 이제는 좀 초조해지는 것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평소 성격이 급한 나 치고 꽤 오랜 시간 평정을 유지했다고 본다.) 어쨌거나 그래서 요즘은 나의 소박한 성과들이 종종 애처롭게 느껴진다. 전에는 만족하고 기특하기만 했는데 지금은 얘네들이 빛을 볼 일이 있을까 싶어서 딱하다. 열정적이고 진취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면야 외부로 향하는 목표가 원동력이 되겠지만 나에게는 다소 위험한 증상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인내심 연장을 위해 초심을 찾기로 했다. 바로 여기 나의 브런치에서!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시절의 결심이 담긴 에세이들을 보면 바깥이 아닌 내 안의 근본에 대해 다시 기억하게 된다. 언젠가 찾아올 외부적 성과를 기다리는 인내심이 아니라 나 스스로 만족할 만큼 작품들이 쌓이도록 충분히 시간을 보내는 인내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떠올린 안타까운 이유는 바로 자신감 문제다. 꾸준히 글을 쓰고 고이지 않는 감각을 유지하려면 지속적인 주입이 필요하다. 그런데 여러 좋은 작품이나 성공 사례들을 보다 보면 내가 너무 작아져버리는 것이다. 내가 쓰는 글에 대해서 자신감이 떨어지니까 선뜻 글이 나오지 않았다. 나에게는 몹시 뜻깊고 거대한 의미를 가진 독자분들의 호응도 수치적으로는 아주 아담하다 보니 뭔가 송구하기도 하고 의욕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위의 문제들에 비하면 자신감 결여는 금방 회복되었다. 물론 100%는 아니고 한 70% 정도지만 바닥을 쳤을 때에 비하면 괜찮은 수준이다. 회복방법은 간단했다. 독자분들께 받은 메시지를 읽고, 내가 나의 글을 다시 읽었다. 나의 글은 정말 지독히도 나의 취향에 맞춘 것이기 때문에 그 완성도를 떠나서 내가 보기엔 정말 재미있다.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들이 내가 좋아하는 장면들을 만드는 것을 보면서 기운을 차렸다. 세상에 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점점 사라진다고 해도 나 한 명만큼은 꼭 남게 될 거니까. 나를 위해서라도 글을 쓰기로 했다.






이 글 자체가 내가 얼마나 글 쓰는 것에 집중하고 있지 못하는 지를 보여주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글이 안 써지면 그 이유에 대해서 실컷 고민하다 이런 글을 쓰게 됐을까? 나중에 또 이런 순간이 온다면 나의 디스크에서 이 조각을 꺼내보면서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기를 바란다. 집중력, 인내심, 자신감을 확인하고 다시 계속 글을 써 나가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MBTI 반반인간의 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