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호와 5호 여자 (1)

복도 아파트의 여자들

by 여름

(1)

먼저 이사를 온 것은 4호였다. 나보다도 먼저 이사를 들어와 있었으니, 그녀가 얼마나 이 곳에 오래 살았는지 나는 옆집 할머니가 이야기 해 주시기 전까지는 몰랐다. 엘리베이터를 내리면 긴 복도를 따라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바다에 가면 따개비가 바닷돌에 붙어있는 것처럼. 누가 새벽에 씻고 일을 일찍 나가는지, 오늘은 누구집에서 고성이 오가며 싸우는지를 궁금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프라이버시는 재력과 동일한 단어라는 것을 이 곳에 살면서 배우는 중이었다. 돈이 없는 작은 집, 그것도 이웃과 붙어서 살 수밖에 없는 집에서는 오늘 무슨 일로 싸우고 웃고 울었는지 낱낱이 티비에 송출되듯이 소리가 새어 나갈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되도록 집에서 입을 다물었다. 갈등이 생기는 일이 있으면 남편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무인 카페에 가서 조용히 차 두 잔을 시키고 나란히 앉으면 금방이라도 입에서 욕이 터져나올 것 같은 기분이 사그라 들었다. 이 곳에 산다고 나도 이 곳에 사는 사람들처럼 물들어서는 안 된다는 게 나를 지키는 유일한 철칙이었다. 처음부터 나도 유난을 떨었던 것은 아니다. 술약속을 마치고 자정까지 들어오기로 한 남편이 늦은 날, 다음날 옆집 할머니가 "아유, 왜 그렇게 싸워들. 젊은 사람들이. 서로 아끼고 살아야지."라고 말씀하셨을 정도로 나도 그냥 별 생각없이 나의 생활 소음을 만들어가며 살고 있었다.

아차 싶었지만 다음에 조심하고 말지 뭐 하며 별다른 생각 없이 할머니의 말을 흘려들었다. 진짜로 내가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건, 바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일주일이 지난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토요일은 아파트 청소하시는 여사님이 쉬시는 날이다. 제발 음식 쓰레기를 버릴 때는 음식 쓰레기통에 받쳐서 가거나, 봉지라도 두 겹으로 씌우면 되건만...어찌된건지 여기 사는 인간들은 하나같이 헨젤과 그레텔처럼 음식쓰레기 국물을 제 집 앞부터 복도를 지나 1층 현관에 나올 때까지 흔적을 남겨둔다. 그 날은 좀 심했었다.

잠깐 분리수거를 하러 나가던 내가 생선 썩은 내에 구토가 일어날 지경이었으니 복도 끝으로 표시가 되는 것을 보고 누구집인지는 알 수 있었지만 내가 따질 일도 간섭해서 말싸움이 일어날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집에 들어가서 바닥 걸레와 알콜소독 분무기를 챙겼다.

- 어디가? 남편이 물었다.

= 청소하러 가. 쓰레기 국물이 너무 떨어졌어. 내가 대답했다.

나는 본디 그렇게 착하거나 민주시민의식이 고양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바보같이 2대의 엘리베이터가 있는데도 똑같이 그 쓰레기 냄새가 나는 엘리베이터를 다시 탔으니, 머리가 멍청한 내가 다른 멍청한 짓을 할 누구를 위해서 청소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아파트는 의외로 낮에는 조용했다. 밤에 돌아온 사람들이 내가 집에 왔노라고 지랄발광을 하며 시끄럽게 구는 일이 많아서 그런지 낮은 그렇게 평온할 수가 없었다. 택배 배달을 오는 사람들이 쿵쿵거리며 빨리 뛰는 발소리 말고는 아파트에 다른 소리는 전무했다.


집 현관문을 열고 나와서 음식 쓰레기 국물의 근원지부터 쭉 따라서 닦다가 결국 엘리베이터까지 청소하게 생겼구나 싶었는데 5호 여자가 탔다. 나는 오해를 받을까 싶어서 얼른 말을 걸었다.


- 아 제가 그런게 아니구요. 누가 흘리셔서 냄새 너무 나서 닦는 중이니까, 옆 엘리베이터에 타세요.

= 아, 네 고맙습니다. 여기 사세요?

- 네 저는 저 안쪽에 살아요.


여자는 새침한 표정으로 가벼이 목례를 하고는 옆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처음 보는 여자였다. 5호에는 50대 중반쯤 되는 부부가 살았었는데, 언제인지 모르게 이사를 나가고 크고 하얀 진돗개를 키우는 혼자 사는 여자가 이사를 들어와 있었다. 여자는 키가 168정도 되어보이는 30대 중반이었다. 후드티에 레깅스를 입었는데 한 눈에 봐도 몸이 탄탄하고 굴곡졌다. 그런 여자에게 크고 하얀 진돗개는 액세서리 같아보였다. 나는 이 정도로 하얗고 큰 개를 데리고 다녀도 되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는듯이. 우리 옆집에 사는 나이든 잡종견 호동이와는 정반대였다. 그렇게 한 번을 마주친 후에 여자를 한참동안 볼 수 없었다. 내가 집에서 주로 일하기 때문이기도 했고, 잠시 장을 보러 나가다가도 마주치게 되는 4호 여자와는 달리, 5호 여자는 아예 집에 없는 것 같이 인기척을 느낄 수가 없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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