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호와 5호 (3)

복도 아파트의 여자들

by 여름

(3)

걱정할 일은 한 번이 아니었다. 그동안 살면서 마주칠 때마다 4호 여자의 냉랭하면서도 묵직한 기운에 마음이 불편했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부모의 딱딱하고 오랜 가르침때문에라도 나는 그 마음을 뒤로 저물게 두었다. 그런데도 하루가 지나면 해와 달이 서로 바뀌어서 제자리를 찾는 것처럼 내 마음은 그렇게 하루 이틀 숱하게 지나자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저 여자는 위험한 게 맞아. 하는 마음속 목소리와 함께.


금요일 밤이었다. 엘리베이터에는 벌써 몇 주전부터 주택 인구 총조사를 한다는 안내가 붙어있었다. 나는 이미 온라인으로 조사를 마치고 집에 사람이 오지 않도록 조치를 해 두었다. 어르신들이 사시는 가구에는 일일이 통장이 다녀가면서 집에 누가 사는지, 진짜 사는지, 이거저거 확인을 했다. 그 조사가 이제 막바지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복도에서 통장을 만난 날이었다. 50대의 말갛고 하얀 여자분이셨다.

무엇보다도 누구를 대면해서 말이나 제대로 할까 싶은 인상이었다.


더군다나 말싸움이라도 나면 눈물부터 흘리겠구나 싶은 얼굴이 내 눈에 남았다. 저런 사람이 통장을 할 수 있을까? 태음인처럼 체격이 강골하고 단단하며 머리는 상대방 기를 죽이게 와인색이나 보라색으로 염색을 하고 짧은 커트머리를 한 여자. 그런 스타일의 사람들만이 통장을 거뜬히 해낼거라고 생각한 내가 우스웠다. 그녀는 그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편의점에서 소화제를 사다달라는 남편 부탁에 나가는 길이었다. 며칠 전부터 5호에는 이제 마지막 방문이 될 터이니, 전화를 받든지 연락을 달라는 통장의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집은 계속 비어져있었다. 개가 간간이 짖고 누군가 소리지르는 소리가 확연히 들렸다. 통장이 붙여놓은, 어쩐지 겁에 질린 듯한 하얀 종이 하단에는 굵고 검은 매직으로 글씨가 써 있었다.


- 벨 누르지 X , 개 짖음, 노크 절대 X

처음엔 집에 없는 5호여자가 써 놓고 갔겠거니 했다. 그런데 통장 아줌마를 만난 그날 밤, 그 여자가 쓰지 않았다는 걸 확인했다. 통장은 벨을 계속 눌러댔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내가 다가갔다.

- 저기요.

=네?

- 여기 벨 누르거나 문 두드리면 개 짖어서 저번에도 싸움났어요.


나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나 4호에 소리가 들릴까봐서. 통장 아줌마는 아주 연약해보이는 외모와 다르게 유별난 끈기가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걱정돼서 흘끗 그녀를 보는 나를 무시한 채로 계속 벨을 눌러댔다. 그때였다. 갑자기 4호 문이 벌컥 열렸다. 씩씩 거리며 4호 여자가 등장했다. 복도를 휘저으며 큰 발소리로 걸어다니기 시작했고 나도 무서워져 얼른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탔다. 다행히 통장 아줌마는 발빠르게 계단으로 도망간 뒤였다. 소화제를 사 들고 다시 1층으로 돌아왔을 때, 아줌마를 마주쳤다.


- 혼자 오시면 안 될 것 같아요. 위험할 것 같아요.

= 아니~ 오늘도 저기 그...4호 여자가 낮에 술이 거하게 취해서 기본도 모른다고 시끄럽게 군다고 욕을 욕을 하면서 소리를 질렀어요. 제 전화로 전화를 해서요.

- 다음번에 꼭 하셔야 하면, 다른 분과 함께 오세요. 아니면, 미리 5호집 사시는 분과 연락해서 오세요.

= 네에~감사합니다.


아줌마는 바삐 걸음을 옮기며 다시 1층에 확인 못한 세대를 찾으러 다녔다. 나까지 심장이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마음을 추스려 집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어제 일이 다 잊히기도 전에 나는 산책을 나섰다. 옆집 할머니가 호동이와 함께 나가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계셨다. 짧게 인사를 하는 사이, 4호 여자가 시뻘건 얼굴로 계절에 맞지도 않는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할머니 곁에 섰다. 할머니는 그녀와 인사를 나누었다. 오래 살아서 알고 지내는 건지, 그저 인상이 험악하니까 위험할까봐 의례적으로 인사를 나누는건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나는 무서워서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는 그 여자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고는 인생 내공이란 게 저거군 하며 속으로 생각할 뿐이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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