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호와 5호 (4)

복도 아파트의 여자들

by 여름

(4)

옆집 할머니의 내공을 부러워하면서도 엮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게 동요했다. 나는 저 다툼을 멀리서만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모양새로 어떻게 구성되어서 사는지 알아내는 조사 기간 시간이 지나자 겨울이 다가왔다. 복도식 아파트는 결로가 자주 생겼고, 빨래를 하지 말라고 방송하거나 어느집에 물이 새서 터졌다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옆집 할머니는 늘 당당하고 멋쟁이같이 하고 다니셨는데 특히나 보라색 아이쉐도우가 정말 잘 어울리는 분이셨다. 우리가 이사오기 얼마 전, 사별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그런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과연 저 분이 사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분이 맞을까? 하고 고민해야할 정도로 쾌활하고 화통하셨다.

몇 번의 누수 사고가 터지고 드디어 모두에게 평화가 찾아오는 봄이 됐다. 할머니는 나이든 강아지 호동이를 데리고 늘 하루에 3번 산책을 나가셨다. 누가 보기에도 할머니의 걸음걸이는 불편해서 산책을 시키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것 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늘 새벽, 점심, 오후에 꼭 호동이에게 밝은 햇빛을 보여준다며 아파트 뒷 길의 작은 산책로를 걷고 또 걸었다.


할머니 집 옆에는 비상 계단이 있었다. 거기에는 이런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흡연 금지, 옆 집에 호흡기 환자가 살고 있어요.>

그런 안내문이 붙어있든지 말든지 4호 여자는 그 비상계단에서 담배를 피웠다. 시간이 몇시든 상관없이 쾅쾅 문을 닫아서 하루는 남편이 쫓아가서 싸울 정도로 제멋대로 사는 여자였다. 내가 보기에는 혼자 살기에 아주 적합한 여자라고 늘 생각했는데 그 여자에게도 남편이 있었다. 주로 고성을 지르고 욕을 하며 싸우긴 했지만, 그 여자에게도 남편이라는 식구가 있었다. 그 남편은 늘 흙발로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 부스러기처럼 자기가 일하고 온 곳이 분명히 외부라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흔적을 남겼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4호집 문 앞까지 그렇게 잔흙이 떨어져있을 때면 나는 그집에서 곧 큰소리가 나겠군 하며 조용히 이어플러그를 끼고 잠이 들었다. 이어플러그도 소용이 없던 까마득히 긴 밤이 지났다. 잔뜩 열이 받아서 따지기라도 해야겠다고 잠옷 바람에 크록스를 신고 나가는 나를 남편이 붙잡았다.


- 너 가면 한 대 맞고 올 거 같아. 가지마.

= 아니 진짜 미친 거 아니야? 사람이 잠을 자야지 잠을!!!!


씩씩대며 문을 빼꼼히 열어보는데 호동이와 할머니가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인 듯 비밀번호 키를 누르려고 집 앞에 서 있었다. 퀭한 얼굴로 인사를 나누자 할머니가 말을 걸었다.


- 어제 못 잤구나. 얼굴이 퀭 허네.

= 네, 어제 시끄러웠죠? 어머님도 못 주무셨어요?

- 응, 어제는 오랜~만에 들어온 거 같더만 남편이...그런데도 뭐가 그렇게 탓할 게 많은지 동이 트도록 싸우더라고....

= 네....

- 혹여라도 어젯밤 시끄러웠던 것 땜에 싸울 생각말어. 다들 지 들 집마다 사정이 있는거여.

= 네...알겠습니다.


남편에게는 당장이라도 나가서 몸싸움을 할 것처럼 기세등등했지만, 엘리베이터 앞에서 유연하게 4호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니, 그녀의 말이 맞겠다 싶어 나는 현관문을 닫고 정신을 차리고 싶어 우선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다. 한참을 씻고 몸이라도 개운한 채로 나와 남편을 배웅했다. 오늘은 집에서 밀린 일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똑똑 노크소리가 들렸다.


- 누구세요?

= 응, 나 옆집 호동이 할머니야.


나는 문을 열고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 무슨 일 있으세요?

= 저어~ 혹여라고 싸울까봐서 내가 말을 좀 단도리할라고....

- 뭘요?

= 저기 4호집이 5호집이랑도 싸웠다던데 알지?

- 아 그래요? (나는 모르는 척을 했다.)

= 지금 잠깐 시간 좀 되나?

- 아 네 들어오세요.


이사하고 누구를 집에 들인 것은 처음이었다. 다행히 집은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오늘따라 편백나무 스프레이까지 뿌리고 싶더라니. 할머니의 방문이 마치 우연이 아닌 것처럼 흘러갔다.

나는 차를 끓이고 하얀색 이케아 2인용 식탁에 할머니와 마주 앉았다. 할머니는 차만 홀짝이며 드시더니 집안을 빠른 눈으로 둘러보셨다.


= 아직 애기는 없구?

- 네, 이제 차차 생각해봐야죠.

= 그렇구나아...둘다 나이가 좀 있어봬서....

- 맞아요. 좀 늦게 결혼했어요.


중심점을 팍하고 이야기하지 않고 할머니는 말을 빙빙 돌려하셨다 그러다가 찻 잔에 바닥이 보일 때쯤, 다시 차 한잔을 더 달라고 하시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셨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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