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호와 5호 (5)

복도 아파트의 여자들

by 여름

(5)

4호 여자는 멀쩡한 여자였다고 한다. 적어도 7년 전에는 그랬다고 했다. 남편도 호탕한 성격의 사내다운 사람이었다고 했다. 할머니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고. 지금은 내 머릿 속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그 여자의 정상적인 모습이 호동이 할머니 기억 속에서는 또렷했다. 그리고 잦은 소음으로 눈살을 찌푸리는 나를 자주 마주했던 할머니는 눈치채고 있으셨다. 다시 또 어떤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호동이 할머니는 그런 일은 더이상 없어야 된다며 나에게 조용히 다문 입을 떼셨다.


= 애를 잃었어. 6년이 지났지 벌써 아마. 그런담부터 그래. 그러니까 냅둬.

- 아, 네.....


남편과 아이를 아직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내가, 그 여자가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보내줬을지 알지 못한다. 상상을 해 본다한들 그건 상상일뿐, 그 심연의 뾰족한 가시를 내가 알 수도 없겠지. 생각을 하니, 여자가 어쩐지 안쓰러웠다. 담배를 뻑뻑 피워대고, 남편과 숱하게 싸우는 지겨운 날들이 일상이 되리라고는 그 여자도 상상해 본적이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6년 전에는.


호동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여자를 만나면 가볍게 목례를 하기 시작했다. 여자는 처음에 뭐 이런게 다 있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전화 통화를 숨기듯이 후다닥 끊던 것도, 나를 벌레처럼 바라보던 시선도 그만두었다. 같은 여자로서 지키고 싶은 예의가 생겼던 것 뿐이었다. 상처를 다 알 수 없지만, 인간으로서 위로하고 싶은 마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5호 여자의 한탄도 끝이 났다. 4호 여자에게 목례를 하던 나를 한 번 본 이후부터는 나에게 험담을 더이상 늘어놓지 않았다. 여러모로 잘 된 일이었다. 누군가를 굳이 오해하고 비릿한 시선으로 동조하며 마음을 갉아먹는 일을 더이상은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다시 겨울이 되었다. 두 여자 사이에서 벗어나서 이사온 이후로 두 번째 맞는 겨울이었다. 눈이 무섭게 오는 날들이 이어졌다. 왼쪽 집 할아버지께서 눈길이 넘어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할머니는 수술을 하고 누워계시는 할아버지를 찾아가신다며 카카오톡 택시를 불러달라고 부탁하셨다. 그리고 나서 2주동안 두 분을 뵐 수 없었다. 설이 오기 조금 전, 할머니를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다. 얼굴이 말갛고 투명한 분이라 눈가가 빨갛게 변한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그저 한 마디를 하셨다.


= 우리 아저씨 갔어.

- 아 어머니........


나는 나보다 더 작고 유약한 할머니를 안고 울었다. 울지 말고 씩식하게 안아드리기만 했어야 했는데, 내 내공은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다. 할머니의 빨간 눈망울이 토끼의 그것 같아서 더 마음이 무너졌다. 아직 장례가 다끝나지 않아서 볼 일이 있어 집에 잠시 들르셨다고 했다. 문상이라도 가려고 여쭤봤는데 연신 거절하셨다.

할머니 손에는 담배 한 갑이 들려져 있었다. 평소에 할아버지께서 피우시던 그 담배였다. 나도 자주 보던 그것이 분명했다.


= 4호 새댁이 주고 갔어. 우리 아저씨 담배 동무였거던.

- 아, 그랬어요?

= 응, 애기가 한 번 잘못 되구....담배를 많이 피웠어. 우리 아저씨가 말렸는데도 그렇게 피웠어.

- 네에....


그저 신고를 할 여자라고 생각하고 경계만 하다가, 아이를 잃은 사연의 여자인 걸 알았고, 떠나는 사람에게 담배 한 갑 사 줄 수 있는 인간임을 보게되자 갑자기, 사람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볼 수 있다고 자신하며 살았던 시간들이 무의미해졌다. 척보면 척이라고. 하는 꼴을 보니 글렀다고 숱하게 말하고 다녔던 썩어 문드러진 내 입술을 저주해도 늦은 일이었다. 그 입방아 아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살았다. 나도 누군가의 안줏거리로 씹히다가 버림을 당했다해도, 나까지 그럴 일은 아니었는데 후회해 봤자 늦기도 한참 늦었다.


복도식 아파트에는 여자들이 산다. 남편을 떠나보낸 여자가, 아이를 떠나보낸 여자가, 그 여자들 사이에서 가혹하게 자신을 직면한 여자가 산다. 모여서 모임을 하고 웃고 떠들 처지들은 아니다. 그래도 소문 많은 이 곳에서 자리를 트고 앉아온 사람을 내쫓지는 말아야 할 의리는 있어야 한다. 그 다음 입소문의 주인공이 누가 될까? 또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겠지. 소문이라는 것은.

입은 무겁게 시선은 적당하게. 복도식 아파트에 사는 여자들은, 그래야만 살 수가 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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